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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조영태 목사)   14-02-11
jcmm   3,986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
엡2:11-18


어느 날 저녁 A형과 B형과 O형 AB형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식사 중에 AB형이 아무 말 없이 뛰쳐나갔습니다.
그러자 곧 O형이 야 AB형 어디가? 갑자기 A형이 심각해집니다. 곧 B형을 보면서 재 나 때문에 나간거야? 하고 묻습니다. B형은 A형을 보면서 누가 나갔어? 라고 되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혈액형의 특징을 잘 살려서 만들어낸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혈액형이 갔다고 성격이 다 같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재미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때로는 사람을 체질에 따라서 다혈질 우울질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한동안 유행했던 DISC
기질검사로 사람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테스트로 사람을 다 알 수도 없고 또한 오늘과 내일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같은 형제라도 성격이 다르고 체질이 다릅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도 있고 살면서 형성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개성과 다양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다양한 곳입니다. 특히나 해외에 있는 교회는 한국에 있는 교회들보다 더 다양함이 있습니다. 가정배경이 다르고 지역이 다릅니다. 교단이 다르고 자라온 교회 문화가 다릅니다 . 그런 우리들이 인도에 모여서 한 교회의 구성원을 이루어 예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인 줄 믿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위치한 에베소 지역은 바울시대에 소아시아의 해안가의 위치에 있는 대표적인 무역도시였습니다. 특히 에베소에는 풍요의 상징인 아데미 여신을 섬기며 웅장한 아데미 신전에서의 제사와 아데미 신상 모형 판매 등을 통해서 관광, 종교적인 사업으로 큰 이득을 보는 지역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여건과 발달된 무역과 우상 신전의 조화로 유흥문화가 발달했고 신전에서 행해지는 성적인 타락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에베소 지역에서 사도바울은 2, 3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 2년 반이나 말씀을 전하며 목회를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바울을 통해서 큰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도 떠나가고 악귀도 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도바울에게 에베소 교회는 특별한 애착을 갖는 교회였는데 사도행전 20장에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 고별설교하는 중에 자신의 에베소교회 목회는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구성원들은 크게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나누어지는데 다시 말하면 유대인에 속해있던 성도와 헬라인 출신의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은 유대인 외에 모든 족속은 이방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헬라인이 한 공동체 안에 섞여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에는 근원적인 갈등의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가 근원적인 갈등의 요소를 갖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한 교회의 공동체가 되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 2장 11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로부터 소외당한 이방인들의 비참했던 과거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그 때에 이방인이었습니다. 11절에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말하고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고 칭함을 받았다는 것은 유대인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개, 돼지 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준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지켰습니다. 그 중에서도 몸에다 하는 할례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뚜렷한 증거로 여겼습니다.

할례는 남성위에 하는 표식을 말합니다. 일부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행하는 위생적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종교적인 매우 중요한 표식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무할례자’라는 말은 구원받지 못하는 자, 지옥가는 자들이라는 조롱과 저주의 의미로 쓰여 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이방인들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이 말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영적으로 무지했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이스라엘 밖에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없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자였고 하나님의 언약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아데미 신전에서 하나님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두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우상일 뿐이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13절에서는 그렇게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말은 바울의 핵심신학사상으로 에베소서에서 더 많이 강조되는 중요한 개념인데 ‘옛 인류의 대표’ 인 ‘아담 안에서’ 라는 말과 대조되는 ‘새로운 인류의 대표’ 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구원받은 성도들의 상태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벽이 허물어 진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1:20

십자가의 피는 끊어진 인간관계와 뒤틀려진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시키시고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 14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화평의 핵심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간의 원수가 되게 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신의 육체로 허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원수가 되었으며 중간에 막힌 담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 담은 실제적으로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을 분리시킨 예루살렘의 성전의 담이며 궁극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분리의 원인인 계명의 율법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유대인들만 선택한 민족이며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까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족속에게 약속된 말씀을 자기민족으로 에게만 축소시키고 스스로를 구별하여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들의 종교선생들이 만든 율법이나 전통이 오히려 말씀보다 더 중요시 되었습니다. 율법에는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고 하는 많은 조항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교제의 핵심은 식사교제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번은 초대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가 안디옥에 내려가 바울도 만나고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떠나가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바울은 베드로를 대면해서 책망했다고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 있는 베드로조차도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율법은 자연스럽게 유대인과 이방인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유대인의 우월감이 왜 너희들만 특별하냐? 는 이방인의 적대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다른 것을 찾고 서로의 잘못을 따지다 보면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같은 것을 찾고 말할 때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여자를 만드시고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최초의 사랑고백이며 사람이 인간관계를 시작하면서 남긴 첫 번째 명언입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너는 바로 나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여집사님들! 남편분이 여러분을 보고 첫 번째 던진 한마디는 무엇이었습니까? 혹시 전에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데요? 라는 말은 아니었습니까? 청년자매들은 이 말을 듣게 될 때에 이 말이 작업인지 진심인지를 살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겠습니다.

아무튼 아담은 하와에게서 동질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같다 라는 것이죠. 그러니 연합이 된 것입니다.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는 참 다른 점이 많다고 하는 부부들을 종종 만나는데 사실 그 근본적인 매력은 다른 점이 아니라 같은 것을 찾을 때 시작됩니다. 취마가 같고 식성이 같고 가치관이 같을 때 그냥 친근해집니다. 그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자 서로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잘못된 것,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관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 성도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가정과 교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며 교회는 가정을 크게 확대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과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가정도 교회도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며 훈련을 하는데 너는 고향이 어디지? 어느 학교출신이지? 너희 아버지 직업이 뭐지? 하고 따진다면 제대로 팀웍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같은 팀이기 때문에 홧팅하고 시합에 나가서 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따질 것이 뭐가 있습니까? A형이면 어떻고 B형이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진짜 B형 남자들이 성격이 안 좋습니까? B형 남자 분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요? 사실 제 동생은 B형인데 성격이 좋습니다. A형이 다 소심한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로 사람을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출신이 다르면 어떻습니까? 학생이면 어떻고 어른이면 어떻습니까? 직장생활을 하든지 개인 사업을 하든지 우리가 한 교회를 이루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육체로 모든 담을 허시고 한 새사람으 로 지어주셨습니다. 15절에 한 새사람은 새로운 인류라는 말입니다.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즉 새로운 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관점에서 ‘신인류’ 는 머리를 레게머리를 하고 고개를 흔들며 랩을 한다든지 등과 어깨에 타투를 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교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사역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화목하게 하시고 이 둘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0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흩어지고 깨어진 모든 관계들이 회복되고 새 창조가 되어 지는데 그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교회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신비는 첫 째는 가정에서 이루는 부부의 연합이며 둘째는 교회 안에서 이루는 성도의 연합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신 사역을 기초로 세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숫자적으로는 둘이지만 둘이 하나를 이루는 신비한 공동체이듯이 성도도 둘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결혼생활과 교회생활은 끊임없이 2인 3각 경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리에 끈을 묶고 경기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명만 잘 뛴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끈을 중심으로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이 끈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연합을 이루게 하는 결정적인 원리입니다. 이 끈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띠라고 표현 할 수도 있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띠로 묶였습니다. 18절에 보면“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그 담을 허시고 십자가로 계명의 율법을 폐하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대표되는 둘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지어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시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생 시절부터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로마서12:18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말씀처럼 화목하게 하는 사람, 평화의 끈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이라는 대목이 참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참된 의미라 생각하고 부족한 대로 지금도 기도하며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강조하셨습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인줄 믿습니다. 롬14:17

우리는 임마누엘 교회를 통해서 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기질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화목하게 되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갑시다(조영태 목사) 
[2013년] 요한복음강해(33)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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