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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10)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   14-12-08
조영태목사   4,267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

                                                                                                        빌3:1~9

Ⅰ. 유대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바울은 1절에서 다시 한 번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기뻐해야 할 책임과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고난 중에도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떨어져 썩어짐으로 많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며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 바울 자신은 성도들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서 반복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는다고 강조한 후에 2절에서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을 삼가하라고 경고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히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악의를 가지며 그들을 향해 짖어 대고 물어뜯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과는 반대되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바울은 그들을 ‘손할례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육체의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율법주의자들에 반해서 참된 신자는 영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함으로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Ⅱ. 누구보다도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들이 많았던 바울
4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육체’는 인간의 행위, 자랑거리로 해석할 수 있고 ‘육체를 신뢰한다는 것’은 ‘혈통적으로 타고났거나 인간적으로 성취한 것’ 등 보이는 것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육체 안에서’ 연결되어 율법의 준수에서 생기는 자기 신뢰를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제가 학생 때만해도 동네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무슨 성이냐 몇 대손이냐? 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라를 건국한 왕족이다. 귀족이다. 하면서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혈통과 족보 자랑은 유별납니다.
 오죽하면 지금도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에 빠져있겠습니까? 자연히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다’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1차적 대상으로 기록한 마태복음은 첫 절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잇는 후손으로 나셨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요8장에서는 예수님과 진리 논쟁을 하는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어필했던 것입니다. 
 
또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몸에 새긴 할례를 구원의 필수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볼 때에 구원받지 못한 버림받은 존재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무할례자 들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육체의 조건만을 따진다면 바울은 어떤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5,6절은 바울이 자랑할 수 있는 조건들, 아니 과거에 자랑했던 이력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①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  할례는 남성 성기의 포피 끝을 잘라버리는 의식을 말합니다. 창 17:11절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에게 행해진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표증이었으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선택되어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약속의 상징이었습니다. (창 17:10~14)
그러므로 그는 언약의 표징이 있는 사람이고 ‘팔일 만에’를 강조한 것은 아브라함의 정통가문이라는 것입니다. 
②이스라엘 족속이요 - 야곱의 족속을 의미하며 야곱은 얍복강 건너편에서 기도로 승리한 결과로 이 귀중한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 이름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곧 ‘선민’을 가리키는 자랑거리였습니다.
③베냐민 지파요 -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초대 사울 왕을 배출한 지파이며 남북분열왕국 때에 다른 지파들이 유대 나라에서 반역할 때에도 충실히 다윗의 왕가를 따른 지파였다는 자랑입니다. 
④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 노아의 아들 중 셈계의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나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사람과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는 ‘에벨’에서 온 말로 ‘건너 온 사람’ 이라는 뜻이며, 유브라데 강을 건너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에벨이라는 말은 셈을 소개할 때 인용되어 (창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히브리 사람이라고 소개되는 첫 사람은 아브람인데(창 14:3) 히브리인이 셈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들을 통해 구원사가 펼쳐진 것을 나타내게 되었고, 히브리인이 셈 자손의 대표이자 대명사처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의 조상들 중에 한 사람도 이방인이 없고 모두 다 순전한 히브인들이란 뜻입니다. 

⑤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모세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킨 바리새파에 속했고 학식으로는 당대 최고의 힐렐학파의 가말리엘 문하(행 22:3)에서 교육받았던 최고의 수제였습니다. 
⑥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에서는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유대주의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적대시하고,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고 활동했던 것입니다.
⑦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 율법에 써 있는 외적인 준수에 관해서는 율법을 어긴 적이 없으며 누구에게도 흠 잡힐 만한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자랑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신뢰하는 것은 누구를 믿는 것인가? 결국 자신을 신뢰하는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 어느 누구도 의인으로 설 수 없다.
사람의 생명은 그 코 끝에 있다. 

Ⅲ.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 (7~9절)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그의 생활의 여러 가지 ‘유익’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긴다고 선언합니다. 곧 위에 나열했던 ‘유익들’을 해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7절 유익 ‘얻음’, ‘이익’, ‘이득’, ‘욕망’ 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특권들, 즉 상속받은 것이거나 얻은 것이거나 간에 자신의 할례,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점, 삶에서의 그의 행동, 율법을 고수하는 그의 충실함 등을 차례차례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득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적인 잃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명성과 업적의 법에 묶여 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 빌 3:9절에 속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서의 ‘특권’이었고 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그 외에 세상에서 무엇인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알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값진 것입니다. 바울이 태생적으로 획득한 것이든 노력해서 얻게 된 것이든 그가 아는 모든 지식과 조건은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함에 비해서 한 줌의 먼지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8절
바울은 자신이 가진 어떤 유익하던 것, 자랑거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자신이 재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시 말하면 자신이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에 삶의 가치 체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신뢰하던 세상적인 것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 이제는 무가치하고 오히려 해로운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자신의 삶의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찬송가 94장에 보면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가만히 보다가 주님보다 귀한 사람이라고 해야지 왜 귀한 것이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은 주님을 모를 때에는 주님보다 사람을 또는 가진 재산이나 귀중품, 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 등을 귀한 것으로 여겼지만 주님을 알고 난 후에는 어떤 것도 주님보다 귀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로 가사를 마무리 하면서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자는 결단의 찬양합니다.
 이제 바울이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입니다.
그러므로 갈 6장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이룬 것도 아니요 자신의 능력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이 의롭게 되었으니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며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것입니까?
 
삼대 절기를 지키라 (2) 
빌립보서 강해 (9)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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