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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12)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14-12-15
조영태목사   4,24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3:17~21

Ⅰ.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는 사도바울
사도바울은 17절을 시작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나를 본받으라’는 것은 신앙에 있어서 ‘자신을 본뜨라’ ‘모방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본뜨라는 말입니까? 첫째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보고 달려가는 자신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갔습니다. 자신을 부르신 분이 주님이시고 주님이 푯대시니 한 눈 팔 시간이 없었습니다. 목적이 확실하면 허튼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부르신 분이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그 상은 위에 있는 것임을 알고 달려갔습니다.   
이 땅에서도 상을 좋아합니다. 누구든지 상을 받을 때는 어깨가 으쓱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아무리 큰 상이라 할지라도 지나갑니다. 로마시대에는 경주자들이 우승을 하면 면류관을 씌워주었습니다. 면류관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면류관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이 세상에서 주는 것과 다릅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하늘에서 빛납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고 했습니다.
 
하늘의 상은 어떤 동록이나 좀이 먹을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본이 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벧전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는 말씀처럼 직접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한다고 할 때 언뜻 느끼기에 좀 교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랑거리고 삼은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자기와 같은 신앙의 경주를 하게 되기 바라는 진심으로 한 말입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뛰어가라’고 외치는 리더가 아니라 ‘나와 같이 뛰어가자’하면서 독려하는 리더였습니다. 스포츠를 배울 때 폼이 중요하듯이 신앙에도 그 폼이 중요합니다.. 테니스를 배울 때 골프를 배울 때 돈을 주고 배웁니다. 때로는 코치에게 야단을 맞기도 합니다. 잘하는 고수에게 배울 때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합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스포츠든 공부든 사업이든 자신이 편한 대로 해서는 잘될 리가 없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 말을 듣고 잘하는 사람처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 신앙을 가르쳐주고 말씀으로 인도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여러분의 영혼을 살찌게 하고 때로는 말씀으로 권면하고 때로는 책망하면서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인도하는 분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십니까?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사도바울은 자신을 본받는 것 같이 자신과 같이 행하는 자들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런 분들을 주목하라는 말입니다. 배우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본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주변에 먼저 믿은 분이나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보고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을 통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인교회는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어서 어떤 한 면만 보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신앙을 감당하고 교회 안에서도 수고하는 분들은 존경받기 마련입니다. 그런 분들을 신앙의 모델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본을 잘 삼아야 여러분이 바른 길을 가게 됩니다.
본이 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벌써 12월이라 이제 기관들이 총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임원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구역장으로 섬길 분들도 더 필요합니다.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신중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 일은 세상일과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딤전3:9절에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 있는 분, 먼저 짐을 지고 묵묵히 앞장서는 분, 무엇보다도 기도와 예배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은 부족하지만 주님을 의지하고 붙드는 분들을 잘 보고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분들은 목회자와 잘 협력하고 말씀과 권위에 순종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많은 기도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Ⅱ. 성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권면하는 바울
사도바울이 자신과, 자신과 같이 행하는 자들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앙의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고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고 안타까워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바울이 이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누구라고 정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교회 안에 있는 도덕폐기론자들을 가르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이 폐기되었으니 성도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자유가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모든 죄와 허물을 덮기에 충분하다며 죄를 합리화시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멸망은 전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파멸을 뜻합니다.
둘째, 저희의 신은 배요 배를 신으로 섬깁니다. 롬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여기서 배는 인간의 방탕과 탐욕을 상징합니다. 육신의 정욕에 빠져 절제하지 못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습니다.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죄악생활을 오히려 자랑거리로 여기고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엡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땅의 일을 사랑하며 그곳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도 땅을 밝고 있으며 땅에 속한 것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땅에서 나오는 것들이 하늘에 속한 것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사실 내가 내 돈 내고 음식을 먹는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는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강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내가 돈을 벌수 있는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이 음식의 모든 재료가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자연에서 온 것임을 감사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음식을 만든 아내나 어머니 또는 주방장에게 솜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누가복음 12장에서
부자가 더 큰 창고를 지어서 모아야 겠다고 할 때 땅의 일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19절과 20절을 연결하면서 땅의 일과 하늘시민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Ⅲ.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교회 안에 있지만 여전히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사도바울과 그의 복음 안에서의 신앙생활을 본받는 성도들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들입니다. 1: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천국시민노릇을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먼저 시민권은  ‘시민들을 기록부에 올리는 출생 수도나 국적이 있는 국가’ 를 의미합니다. 로마의 피지배자들로서 빌립보의 기독교인들은 멀리 떨어진 수도 로마에 충성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퇴역군인들을 그리로 보내서 정착시켰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채찍질당하거나 체포되지 않았고, 황제에게 호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시민이었기 때문에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라틴어를 사용했고, 로마식으로 옷을 입었습니다. 지방 총독의 간섭을 받지 않고 시 행정을 스스로 운영하는 권리와 책임을 소유하는 등 정치적 특권도 누렸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에서 떨어진 곳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당시에 수신자들은 시민권에 대한 확실한 선지식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만 살려고 해도 비자를 준비해서 와서 외국인 등록을 해야 되고 때가 되면 또 연장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손해 볼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로마시민으로 사는 것에 대한 얼마나 큰 자부심이 있었겠습니까?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성도들의 최종목적지가 하늘이라는 것이며 우리는 하늘 시민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천국을 하나의 도시로 표현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 도시의 거주자로 등록이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하늘시민이 된 것은 삼위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택했다고 말씀합니다.
창세 전에 택한 우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예수님은 구속하시고 성령님께서 인치심으로 우리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졌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 모든 일에 성령 하나님이 보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종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2:10
성도들에게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하는 책임과 특권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1:13
우리는 주소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인도에서의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의 국적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주인은 하늘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행17장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그의 복음사역을 반대하면서 소동을 일으켰는데 17절에서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반대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정의한 말입니다. 다른 임금 예수, 우리의 임금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하늘의 시민입니다. 
하늘시민은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분을 푯대로 삼아서 달려갔습니다. 이 땅에서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것에 연연하지 않고 위엣 것을 보고 신앙의 경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늘 시민은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살후1: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저리로서는 무슨 뜻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뜻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지난주부터 대강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개념으로 한다면 우리의 구원자이신 메시야가 올 것을 대망하는 것이며 신약의 개념으로는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날을 대망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왕궁에서는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은 헤롯왕은 그 아기 예수의 탄생의 날을 오히려 사내아이들을 죽이는 큰 죄악의 날을 만들었으며 서기관들과 유대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도 제사장들은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탄생에 대한 기쁨이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듣고 달려갔고 이방인 동방박사들이 별을 연구하며 먼 유대 땅까지 달려왔으면 나다나엘과 같은 평범한 신앙인들이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모든 인류에게 미칠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기다리는 자들 영접하는 자들만이 천국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고 있습니까? 이번 성탄절은 정말로 예수님만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말이라고 괜히 들뜰 필요도 없고 선물이나 캐롤송도 좋지만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시다.
또한 우리가 맞는 성탄절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시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는 우리는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하늘의 시민권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립보서 강해 (13) 오직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강해 (11) 푯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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