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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설교 / 기도로 받아든 고난의 잔   15-04-20
조영태목사   4,177
 
기도로 받아든 고난의 잔 / 마 26:36-46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백성들이 기뻐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기뻐한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환영을 받으셨다는 면에서는 고난주간에 포함이 될 까? 생각할 수 있지만 예루살렘 입성은 수난의 시작이며 그렇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던 그들이 곧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예수님을 사지로 모는 성난 군중들을 미리 보시는 주님으로서는 그 찬송을 들으시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의 가장 핵심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 이후입니다.
마태복음 21장, 마가복음 11장부터 예수님의 수난의 시작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12장부터 거의 절반 가까운 분량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죽으심은 예수님의 사역의 절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감당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의 사역은 기도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기도와 경건생활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 3:21
다른 본문에서는 기도하는 장면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데 누가복음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세우시기 직전에도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눅 9:18;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모든 기도 중에서도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예수님 잡히시던 날 밤에 드리던 기도는 공생애 기도의 최절정의
기도하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람산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눅 22:39절에 습관을 따라 갔다는 것으로 보아 감람 산은 예수님 혼자 혹은 제자들과 함께 찾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기 위해서 겟세마네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고 난 직후이기에 중간에 가룟 유다만이 예수님을 팔기 위해 자리를 떴고 열 한 제자가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자들은 한 장소에 남겨두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 곧 요한과 야고보만을 데리시고
조금 더 이동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매우 고민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심정을 세 명의
제자들에게는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주님은 지금 공생애의 마침표를 찍기 직전에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고통뿐이 아니라 극심한 심리적,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많은 의학자들은 겟세마네의 기도 때부터 시작 된다고 말합니다.

그분이 가졌던 슬픔은 성부 하나님께서 맡기신 죄의 짐들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린 양처럼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인류의 죄를 한 몸으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앞으로 되어 질 일들을 너무나 분명히 아셨기에 슬퍼하며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 교권을 위협받은 대제사장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거짓 증거,
무지한 유대백성들의 동조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함성, 아무도 없는 그 길을 십자가 지고 홀로 가셔야만 했습니다.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그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의 자리에서 극도의 슬픔이 없이 당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부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은혜가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지는 십자가는 분명한 상급과 그로 인해서 받는 위로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당한 십자가는 저주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저주의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신 죽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자리에서 죽음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의 자리에서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기도라도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24장 25장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계속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고 지금이야 말로 깨어서 기도할 때였습니다.

17장 1절에서 변화산에 데리고 갔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본 자들만이 고난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기도하러 가시기 전에 말씀하셨고 마태, 마가복음에서는 첫 번째 기도하고 오셨을 때 제자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제자들에게 닥쳐오는 시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대속의 십자가였지만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는데 이는 기도로 감당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로만 받아들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서 기도하지 못했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예언한대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잔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39절부터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입니다. 패션오브 the Christ의 시작부분이 겟세마네 기도부터입니다.
영화를 보면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 줄 모릅니다. 고통과 슬픔의 그의 심정을 대변이라 하듯이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신음하듯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라면 모든 기도가 너무 편하게 능력 있게 드려질 것 같은데 눅 22장을 보면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서 예수님께 힘을 더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입니다. 그로인하여 예수님을 힘쓰고 애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터져서 떨어졌습니다.
사람이 극심한 긴장 속에서는 온몸에 모세혈관이 터져서 핏방울처럼 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그 때는
추운 날씨였는데 온 몸에서 열이 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39절을 읽겠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잔은 예수님의 마셔야 할 고난의 잔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잔입니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라고 청탁했을 때 마 20:22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 그 잔은 단지 모든 제자들에게 적용되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순교를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 부림 치면서 이 잔이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에 잔이기 때문입니다.

그 잔은 인류 구속을 위한 잔이었습니다. 거룩한 자가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대신해서 담당해야할
잔입니다.
고난 받는 종, 메시아를 잘 표현한 이사야 53장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그가 찔림은
군병들이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었습니다. 그 가시는 손가락 굵기만한 크기에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을 주는 가시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쪽의 손과 발을 포개어두고 대못에 찔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는지를 확인하려고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2)그가 상함은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막 15:19-20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습니다. 침 뱉음을 받았습니다. 심한 심문과 혹독한 매질에 상했습니다. 온몸은 찢겼고 십자가의 참혹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받아야 하는 잔은 우리의 죄악 때문에 받는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 롬 5:10

3)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망으로부터 죄로부터 허물로부터 질고로부터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인류 구속을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
그 잔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단절이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의 기도의 절정은 하반절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잔을 피하고도 대속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원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주님은 슬퍼했고 죽을 정도로 괴로운 심정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으나 그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으므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마셔야 하는 잔이 무엇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영어표현처럼 There eyes were heavy. 그들의 눈은 매우 무거웠습니다.

물로 심야에 피곤한 시간이었고 또한 눅 22:45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셨습니다. ‘너희 중 한 명이 나를 팔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잠들었습니다. 잠들어서는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잠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잠드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약해져있었지만 제자들을 위로하며 주신 말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살펴주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둔감함으로 잠들었을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의 길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 앞에서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제자들도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대부분의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마가로 보이는 청년은 잠옷같이 입고 온 홑이불을 버리고 맨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다가 부인했습니다. 신앙은 호언장담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사명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깨어있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러오자 베드로는
칼로 말고의 귀를 자르고 난리를 부렸지만 곧 도망갔습니다.
주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나라는 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생명을 주심으로서 이루시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주간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굉장한 유익을 주는 기간입니다. 물론 우리가 매일 매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면 좋지만 평소에 그러한 경건의 훈련을 갖지 못했다면 이런 기간을 통해서 흩어졌던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로 모으고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기회로 맞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오셔서 제자들을 책망했다고 했습니다.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겠느냐? 이 말씀에 찔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지에 평균수명을 80년으로 보았을 때 일생 동안 어떤 에 얼마의 시간을 소비하고 지내는지 활동을 비교한 기사가 게재된 바 있습니다. 이는 영국의 경우로 하고 있기에 한국인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이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1년을 시간으로 계산한다면 8,760시간
인생을 80년으로 계산한다면 701,280시간입니다. 
우리 인생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무엇일까요?
잠자는 시간에다 25년, 일하는 시간에 25~30년, 먹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등에 3~4년을 사용합니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 아무생각없이 허비하는 시간도 꽤 많다고 합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웹서핑, 페북, 카톡하는 시간을 계산한다면 엄청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시간들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입니다. 위에 경우는 불신자라고 가정을 하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인생에 시간을 무엇을 하는데 쓰십니까? 그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예배하는 시간,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등 경건의 힘쓰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 중에 일주일에 한번, 1시간을 예배 드리는 분이 있다면 1년이 52주이니 1년에 52시간이 됩니다. 평생에 그렇게 한다면 4,160시간이니 반년에 좀 못미치는 시간이네요. 만약 두 번 예배를 드린다면, 예를 들면 주일 공 예배와 수요예배를 같이 드린다면 8,320시간이니 1년 정도가 됩니다.

물론 성경공부나 기도시간을 더하면 시간은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커피 마시거나 사람 기다리면서 보낸 시간보다 못 미치는 시간입니다.
현재 여기 참석한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는 80이라는 나이가 실감이 안 나겠지만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깨어있으십니까? 고난주간을 맞으면서 기도와 예배의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부담을 가질 수 도 있고 부담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번 노회장으로 오셨던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 장로님 아들이 핸드폰 게임에 빠져있는데 아들의 핸드폰을 뺏으려고 하자 그 눈에서 살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로 보냈는데 그 첫날에 핸드폰을 내라고 하자 중독환자처럼 덜덜 떨면서 핸드폰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곧 학교에서 하는 훈련프로그램에 따라서
1,000구절을 암송하자 그 증상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심각합니다. 손에서 핸드폰을 떼지 않습니다. 중요한 연락이 올 것처럼 수시로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는 한 시간이 뭡니까? 5분을 집중해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하루에 10분도 기도하지 않고 성경 3장도 읽지 않고 어떻게 영적인 전투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을 건 기도가 없었다면 예수님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고난주간에 타의에 의해서 자의로 맞는 고난주간이 있습니다. 외부의 환경적으로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벽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쉬운 거는 누가 못하겠습니까? 누구나 하는 것이라면 상급이 있겠습니까? 많은 한국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 40일 특새를 합니다. 꼬박 참석하는 성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주간이 아니면 언제 주님을 위해서 금식하겠습니까? 개인적인 다이어트 건강상의 이유 또는 바쁜 일정가운데 식사를 거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중에서는 한 끼만 건너면 머리가 어지럽고 그런 분 있습니다. 그러나 또 금식할 때에는 힘을 주십니다. 유혹이 있긴 있으나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이번에는 금식한 것을 100루피로 해서 현지 고아원이나 선교후원비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많이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고난주간에 금식을 처음 배웠습니다. 하루금식에 동참했습니다.
금식하면서 가장 사과가 먹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그것이 훈련이 되었는지 다음번엔 어려운 일이 있을때 삼일금식을 하곤 하면서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금식기도가 만능키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처음에는 내 기도를 하게 되고 후에는 주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보십니다. 여러분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순종하지 못했으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니느웨로 가서 사흘 길인데 하루만 선포했습니다. 니느웨이를 향한 외침에 왕이 온 백성들 우양과 가축까지도 금식하게 했습니다. 그것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노약자나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분을 제외하고는 다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여러분 쉬운 시간 말고 어려운 시간을 택하십시오. 직장인으로서 저녁식사가 어렵습니까?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점심에 직장에서 먹어야 하고 저녁은 회식이 있고 그래서 언제 금식합니까?
지혜롭게 잡을 필요는 있지만 예를 들어 여러분 주님께 가져오는 것은 가장 값진 것을 가져오십시오. 시간과 물질 가장 어려운 순간에 드린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30년은 공생애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불꽃 같이 사역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를 발라 하나님의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귀한 것 가져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양이나 소를 돈을 주고 샀습니다. 이윤을 남겼습니다. 장사가 됐습니다. 그 장면을 보시고 예수님은 화를 발하시고 엎으셨습니다.
어려워도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좋을 때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간, 가장 좋은 것 가져오십시오. 헌금용으로 구별해 두는 집사님을 보면서 참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기간에는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시오. 헌신하십시오.
몸으로 주님의 길을 따라나서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 40일 금식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난에 동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정말 십자가가 안 믿어지시는 분들,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믿음의 진전이 없는 분들도 한 번 이번 기회에 기도하고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갈급한 영혼을 만나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신 좁은 길로 따라 나서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며 구원의 길이됩니다.

42절 44절에서 예수님은 동일한 기도제목으로 연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총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삼은 성경에서 완전수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결국 그 기도는 들으심바 되었습니다. 승리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기도는 그 잔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잔을 받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45절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왔습니다.
기도로 이미 잔을 받아들고 십자가의 길로 나가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신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이 18: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결국 기도에 실패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인했고 기도에 자리에서 피땀 흘리신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인류구원의 대속의 죽음을 받아내셨습니다.
기도로 고난의 잔을 받아 드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강해 (75) 부활의 증인들 (2) 
사무엘상 강해 (1) 구한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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