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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11) 에벤에셀의 하나님   15-07-20
조영태목사   4,179
 
에벤에셀의 하나님  / 삼상 7:12-17
         
7장 전반부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마음을 오직 여호와께로만 향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의 기념비적인 집회인 미스바 성회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말에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금식기도하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 동안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살면서 적당히 흉내만 낸 것, 우상과 하나님을 적당히 섞어서 믿은 것, 하나님 자신보다는 언약궤의 신비한 능력을 의지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불신앙을 회개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이 한 곳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 방백들이 군사를 동원해서 쳐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여호와를 신뢰하고 선지자를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며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셔서 블레셋 진영에 큰 우레를 발하셨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엄청난 우레 앞에 정신을 잃고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쫓아가서 그들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한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고백하고 에벤에셀이라 했습니다. .

미스바는 거국적인 회개운동을 벌인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영토이며 해발 780m 고지로 가나안 중앙지대에 놓인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센은 베냐민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장소이며 미스바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에벤에셀은 사무엘이 승전비의 이름으로 ‘돌’ ‘바위’를 뜻하는 ‘에벤’과 ‘도움’을 뜻하는 ‘에제르’의 합성어로 ‘도움의 돌’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격퇴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승리였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후대에 알리는 기념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이기게 하셨다는 것을 후대에도 알리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고백했고 시 121:1-2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살아계시기 때문에 도와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한 논쟁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출애굽기 3:6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에도 살아계셨고 이삭의 때에도 야곱의 때에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장래에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는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신경의 첫 번째 고백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도와주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죄로 인하여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구원해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또한 전능하신 분입니다.

사무엘은 또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장소적인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곳은 빈들이었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큰 무리들은 아침부터 주님을 따라다니느라 지쳤습니다. 아무도 그 큰 무리를 먹일 수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앉게 하신 후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나누어주게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았습니다. 빈들에서도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바로 제자들을 바다를 건너가도록 하시고 자신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러나 매가 육지에서 상당히 떠났을 때 바람과 물결을 크게 일어 제자들의 배가 침몰위기를 맞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급히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도와주러 가십니다. 제자들은 바다위로 걸어오는 장면을 처음 보고 유령인 줄 알고 소리를 지릅니다. 곧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고 바람은 잠잠해 집니다. 바다에서도 도와주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이나 깊은 바다라 할지라도 주님의 손이 못 미치는 곳은 없는 줄 믿습니다. 한국이든 인도이든지 장소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이 시점까지 도우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에벤에셀이 있기전에 미스바의 회개운동이 먼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와 겸비함을 보시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한 이 시점까지 도우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을 보면 얍복강에서 기도하는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족들과 라반의 집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 집에 있을 때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뺏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에 아직도 앙심을 품은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신에게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나올 때 아내와 아들들을 많이 얻었고 떼를 두 떼나 이루어 부자가 되었지만 에서가 군대를 몰고 와서 자신을 해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얍복강에서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 밤새 씨름합니다. 야곱은 끝까지 그를 놓지 않습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에게 져주시고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십니다. 야곱 곧 ‘속이는 자’, ‘사기꾼’ 에서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라는 승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다음날 야곱은 에서를 만납니다. 그런데 분노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에서가 아니라 동생을 불쌍히 여기고 그와 재회의 눈물을 흘리는 에서를 만나게 됩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밤새 하나님 앞에서 씨름했던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벤에셀의 승리는 금식회개운동의 결과입니다.
에벤에셀의 승리는 오직 주만 바라보고 부르짖은 기도확신의 결과입니다.
에벤에셀의 승리는 온전한 번제를 올려 드린 참된 예배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의 미스바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에벤에셀은 어느 곳입니까? 그 승리의 현장에 돌을 세웠다는 것은 후대에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나중에 내가 기억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그 돌을 보면서 감동을 다시 한 번 재현하게 됩니다.
그 곳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간증과 고백을 할 때 성령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감동을 주십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나에게 은혜를 주신 말씀과 찬양은 지금도 은혜가 됩니다.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엔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이 찬양은 제가 청년 때 은혜를 많이 받은 곡입니다. 인생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며 어떤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가 정말 고민하며 불렀던 곡인데 지금도 이 찬양을 들으면 그 때의 감동을 받습니다.

그곳은 미스바였습니다. 미스바에서 통치한 것입니다.
저의 미스바와 에벤에셀은 새벽기도와 오후 기도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또는 위기와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 새벽기도의 자리에서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퇴근 전에 본당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친밀한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3-14절은 에벤에셀의 승리 이후에 결과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 지경 내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에벤에셀 승리 이후에 블레셋이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통치기간동안에 블레셋을 막아주셨습니다.
그동안 빼앗긴 지경을 되찾기까지 했습니다. 14절에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회복은 히브리어 원어로 ‘슈브’ ‘돌아오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께로 돌이킬 때 쓰는
슈브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을 도로 찾게 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아모리 사람들과도 평화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아모리 사람들은 가난안 족속 중에서 가장 강한 족속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강해지자
공격을 멈추고 화친 정책을 썼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평화는 자신들의 군사력이나 자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신앙의 회복을 통한 것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15-17절까지는 사무엘의 통치 현장입니다.
6절에서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한 이후로 사무엘을 본격적으로 신정통치의 기치를 들고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면서 그 지역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도록 했습니다.
사무엘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라마 자기 고향에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저는 사무엘의 순회통치를 보면서 예수님의 복음전도 현장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으로 첫 기적을 행하신 이후로 고향 나사렛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요단강 동편으로 때로는 시돈으로 끊임없이 순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지런히 영혼들을 찾아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여리고에 내려가셔서 삭개오를 만나시고 세리도 구원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말씀해주셨고 아무도 상종하지 않는 땅 사마리아로 들어 가셔서 물 길러 나온 여인, 곧 남편 다섯을 두었지만 여전히 목말랐던 여인을 만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전해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갈증을 해결해주시는 생수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간음하는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 왔을 때는 그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고 말씀하심으로 사실 그 곳에 서 있는 모두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오직 예수님만이 죄사함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찾아가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너무 오래 문 밖에 서 계시게 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우리와 연합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내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이 문제는 제가 전문가입니다. 하면서 예수님을 서계시게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무엘은 라마에서도 다스렸고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피를 드림으로써 우리를 죄를 제물의 생명을으로 대신하고 희생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인물중 부름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부름받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가장 최선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부름 받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은 제단을 쌓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에클레시아’ 라고 부릅니다.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역시 신약 성도로써  부름을 받았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에서는 제단을 쌓는 것이고 신약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서 제물을 드린 것이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
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많은 초대교회의 특징이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떡을 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정체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을 기념하고 그 분 앞에서 서로를 형제로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빠진다면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 안에서 모든 성도가 서로를 한 몸, 한 가족으로 여겼습니다.
교회는 주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교회를 두려워 하면서도 칭찬했습니다. 믿음의 능력과 삶의 실천을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임마누엘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미스바와 에벤에셀의 승리를
경험함으로써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고 여러분 자신도 날마다 에벤에셀의 승리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강해 (12)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사무엘상 강해 (10) 미스바로 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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