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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12)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15-07-27
조영태목사   4,143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 사무엘상 8:1~22

사무엘도 늙었습니다. 사람의 한계입니다.
사무엘은 12살 되는 나이에 첫 소명을 받았고 30세 되던 해에 본격적인 사사로 활동했던 것으로 본다면 당시의 나이는 대략 55세로 볼 수 있습니다. 늙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아무래도 예전보다 힘이 떨어질 것이고 활동영역이 좁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의 경우는 젊었을 때 벧엘, 길갈, 미스바로 다니면서 순회하면 다녔다면 예전처럼 활동적으로 순회하면서 다스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아들들을 그의 지도하에 사사로 세워서 사역을 분담하게 했습니다.
특히나 브엘세바에 아들들을 보낸 것은 자신의 고향인 라마와 거리도 멀고 블레셋과 인접한 중요한 지역으로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로 따르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며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면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자식은 마음대로 안 되는가 봅니다. 엘리의 아들들같이 제사를 무시하거나 방자히 행한 것 같지는 않지만 공평해야 할 사사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들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밑에서 신앙훈련도 받았을 것입니다. 영적인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중책을 맡겼을 것인데 아버지로부터 멀리 있게 되고 높은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그것을 겸손하게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때가 되면 자신의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사무엘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성품과 경건의 능력을 배우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거듭남을 체험해야 합니다. 거듭남은 내 속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신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부어질 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며 심판받아 죽어야 마땅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대속의 죽음이 없이는 전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자였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나를 위하여 죽어주심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 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이번 중, 고등부 수련회 주제를 ‘거듭남’으로 했습니다. 새로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으로 아는 영적인 체험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그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한 것은 엘리사의 시대가 더욱 치열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점점 더 패역한 세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 또는 신앙의 선배들 세대보다 우리가 갑절의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녀들이 부모 세대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를 감당합니다.

더욱 더 세속화와 인본주의의 물결 속에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 입니다.
훈련이 더욱 강한 특수부대원들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이 시대를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강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한편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옵니다. 5절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사시대에 공포와 억압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늙고 그의 아들들이 사무엘의 행한 길대로 행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불안함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몹시 열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자신들의 전쟁에서 원수들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지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장에서 미스바 성회 당시에 블레셋의 침공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해달라는 간절함은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그 신앙의 결단 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고 하면서 오직 믿음만으로 살 것 같았던 그 고백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줄 알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을 보고 물 위를 걷고 있다가 주변의 풍랑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놓치고 다시 내 힘으로 걷다가 바다에 빠져 버리는 모습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시선입니다. 누구를 어디를 주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세상은 변합니다. 수시로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믿음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령충만은 오늘의 성령충만입니다. 내일의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거룩해지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신랑을 기다리는 10명 은 똑같이 등불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열처녀 비유의 차이점은 그 하나입니다.

타오를 때는 계속 타오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져간 불이 커져 갑니다. 기름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태울 성령의 기름을 부어달라고 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멈추지 않도록 간절히 찾고 찾아야 합니다.

왕을 주어 다스리게 하라는 요구에 사무엘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기뻐하지 않았다는 정확한 표현은 오히려 ‘떨다’, ‘근심하다’입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들었을 때 사무엘은 먼저 백성들이 자신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나를 버리는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곧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하자 하나님은 오히려 백성들의 요구대로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사실은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그랬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아론을 부추겨서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송아지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시로 하나님을 믿지 못했고 불신앙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에도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면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꼬집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왕을 세워 달라고 하는 백성들의 의도가 잘못되었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구한 것은 ‘모든 나라와 같이’ 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하나님 없는 나라들을 따르려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의 결과였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는 주변 국가들과 같아지려고 한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왕만 잘 세우면 우리는 잘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곧 하나님은 왕정 통치의 문제점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낱낱이 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11-18절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첫째, 11-13절은 젊은 남녀의 강제 징집 및 노동력 착취입니다.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1절 ‘어거한다’는 것은 ‘배치하다’ ‘설립하다’ 라는 뜻입니다.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2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들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딸들은 향료 만드는 자 요리하는 자 떡 굽는자로 삼을 것이며 13절
자식들을 데려다가 왕을 섬기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둘째, 곡물 및 가축의 징용 및 징세입니다. 14-17절 까지에서
백성들의 밭과 과수원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왕의 신하들에게 주게 하고 소산의 십일조 양 떼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셋째, 왕의 폭정 및 실정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18절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하나님의 경고는 역사적으로 사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왕정체제는 값비싼 댓가를 요구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자기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을 위해서 전쟁을 하고 자신들의 편에서 통치하리라고 기대했지만 실제 왕들은 기대와 다르게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대에 급급했습니다. 자신과 왕궁을 위하여 막대한 사람과 재물을 필요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재산을 국고로 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왕들은 나라의 불안정을 가져왔고 백성들은 큰 고통에 빠졌습니다. 멀리서 그 예를 찾지 않더라도 초대 왕인 사울이 다윗을 경쟁자로 삼으면서 왕으로서의 자질을 잃게 되면서 폭정에 가까운 통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고 나라전체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전성기 까지 이스라엘이 부강했으나 곧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분열되고 남, 북 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은 많은 왕들이 세워졌지만 하나님 앞에서 통치한 왕 때에 비로서 평화를 누렸고 그 외에는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은 나라가 망하고 70년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러한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거절합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 같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되겠다고 떼를 씁니다.
만약에 사무엘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가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사사로서의 통치 25년간이 헛된 것이었는가 하고 자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요구에 너무 쉽게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잘못된 것일지라도 허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떼를 쓰면 잘못된 것이지만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려고 할 때입니다.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들의 실패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 사래가 아닌 몸종 하갈에게 들어가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 때문에 가정에 문제가 야기되고 결국은 약속의 자손이 이삭이 태어나기 까지 15년을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실수를 깨닫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조급함은 고통만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심으로 그들의 결정이 얼마나 불신앙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수많은 왕들 중에 진짜 왕 메시야를 하나님의 약속하신 다윗의 혈통에서 나오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실수와 허물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써가시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범했을 때에도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죄의 고통을 주시면서도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심으로써 희생제물 피를 흘림으로써 다시금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요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인가를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늘 “주 예수님 나의 생각과 나의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라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왕의 통치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종으로 부리고 우리 것을 빼앗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빼앗아 우리를 통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평강의 왕으로 오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먼저 모든 생각을 하나님 앞으로 사로잡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헛된 생각, 악한 생각, 나쁜 생각을 사로잡고 오직 생명과 회복과 치유와 기쁨의 생각이 샘 솟기를 바랍니다.

또한 생각이 들어와서 흘러오는 마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통치의 격전장입니다.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사단은 생각과 그의 나라를 심기 위해서 우리의 육을 자극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 보고 즐기는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 심령에 거룩한 열정을 부어주십니다. 위로부터 성령의 강물을 흘려보내주십니다. 메마른 땅이 거룩해지도록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주십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
우리 성도들을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백성들입니다.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진리와 성령을 통해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나 칼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음성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왕이신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며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통치를 거부하고 때로는 고난과 시련이 올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르 보호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이 참된 하나님 백성의 고백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통치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통치를 갈망하십니까? 하나님의 통치에 목마름을 느끼십니까?
무엇에 목말라 하십니까?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나의 갈망은 주께서 날 알듯 나도 주님을 온전히 아는 것
나의 갈망은 주 날 사랑하듯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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