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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23) 요나단을 처벌해야 합니까?   16-02-25
조영태목사   2,316
 
요나단을 처벌해야 합니까? / 사무엘상 14:36-46

사울은 전쟁 중인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고 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그 명령을 듣지 못했던 요나단마저 위태롭게 했습니다.
이렇듯 지도자의 잘못된 명령과 지나친 맹세는 큰 해악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지난  주에는 ‘오블리스 노블리제’의 정신을 실천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정신입니까?
먼저 가진 사람이 나누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더 많은 책임과 헌신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까지 나누어주신 것은 그 분의 생명으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최고의 헌신이었습니다. 생명으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복음에 대한 책임, 재정에 대한 책임 또한 재능기부라는 말을 합니다. 재능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도 자신의 믿음과 달란트를 사용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 또한 훈련받은 것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훈련받기를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 여전도회 제직세미나, 남전도회 제직세미나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부구역을 세워서 가정별로 교제하고 기도하는 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36절을 보면 요나단이 음식을 먹은 것을 알지 못하는 사울은 블레셋을 추격하여 섬멸하고자 합니다. 군사들은 왕의 생각을 따르겠다고 하고 제사장 아히야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결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지금까지 전쟁과정에서 침묵했던 아히야 제사장은 일이 너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이 너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신앙적인 지도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할 것인지와 전쟁의 승리 여부를 문의하고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이 제사장 에봇에 들어 있는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물었음에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신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에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잘못 때문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사울 때문입니까? 아니면 요나단이 사울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까?
사울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곧 군대 지휘관들을 불러와 이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 밝혀내고자 합니다. 사울은 감정이 앞서 이 잘못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고 해도 그를 처벌한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가지고 맹세하면서 계속해서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40-42절까지는 죄를 가리기 위한 제비뽑기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쪽에 있고 사울과 요나단은 이쪽에 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실상을 밝혀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럴 때는 사울이 상당히 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과 요나단이 뽑혔습니다. 계속해서 둘 중에 뽑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뽑으라는 말은 ‘던지라’는 말이 더 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뽑는 방법이 아니라 바닥에 던지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제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잘못은 사울과 요나단 중에 있다고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서 요나단이 뽑혔습니다. 사울도 놀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긴장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단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3-46절까지는 사울의 요나단을 심문하고 백성들은 그를 변호하는 장면입니다. 
요나단은 이미 백성으로부터 음식물에 대한 금지맹세를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질문 앞에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 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먹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죽을 각오는 돼 있습니다.
사울은 흥분하면서 아들 요나단에게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곧 너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사울의 논리는 요나단은 왕의 명령을 어겼고 그 잘못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나단도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명령은 부당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명령을 내릴 때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항변하지 않습니다.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고 위기를 당하는 데도 요나단은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비록 자신이 몰랐다고는 하지만 왕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해서 또한 그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백성들은 조용히 이 일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굉장히 흥분해 있고 백성들은 침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백성들이 목소리를 냅니다. 그 때까지 잠잠하고 있던 백성들은 왕에게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은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 요나단을 죽이려고 하고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요나단을 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검사의 역할을 하고 있고 백성들은 변호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는 결국 사울의 공로가 아니라 요나단의 공로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간접적으로 잘못은 왕에게 있음을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오직 하나님의 편에서 전쟁에 임했습니다. 하나님과 동역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을 했습니다.
주변의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공명심과 승리에 대한 욕심은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사울은 백성들에게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쳐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기감정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흥분은 주변 분위기를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재판의 공정성도 놓치게 됩니다.
특히나 리더는 먼저 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우리들은 워리어 같은 용사들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도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공명심과 체면 때문에 흥분해서 창피를 당할 때는 없습니까?
 
그리고 사울은 더 큰 것을 놓쳤습니다.
율법을 살펴보면 요나단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때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레 5:17-18
 
여기서 율법의 근본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도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벌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써 복을 받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을 깨닫고 용서받고자 할 때에는 제사를 통하여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울은 사랑을 놓쳤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될 뿐 완전한 사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을 복음이 완성한 것입니다. 복음은 그 죄를 내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에는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막 12장에서 서기관에게 질문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율법의 근본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계명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또한 죄인을 위하여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왜냐하면 흥분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데 타인에게서 그 잘못을 찾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에 기초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롬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의 확증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십자가는 사랑의 확증이다.’ 때로는 기도응답이 안될 때가 있습니다. 성도도 아프고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고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의 확증입니다.
모든 죄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를 바라볼 때 교회를 바라볼 때 사랑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보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았다면 불순종을 밥 먹듯이 하는 그들을 몇 번 죽이고 또 다른 민족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귀하지만 사실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배드리러 왔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배를 드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일원이 되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에 내가 예배를 드릴 수 있구나.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자녀라고 불러주시고 또다시 범죄한 나를, 실수한 나를 변함없이 받아주시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감사의 시작입니다.
사울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불의한 왕에 의해서도 요나단이 재판과 심판을 받는 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판하시고 심판하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심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벨사살 왕이 잘났다고 유대를 침략하고 전리품으로 가져온 성전기명으로 흥청망청 놀고 마시고 하다가 갑자기 손이 나타나서 벽에다가 글을 쓰지 않았습니까? 다니엘 5장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벨사살 왕에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쓰셨습니다. 곧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여서 나라를 나눈다’ 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울에 재어 보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자기보기에는 다 깨끗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심령을 감찰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나 정도만 되라고 그래!
남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남편 역할 나 정도만 하라고 그래. 저도 한 번씩 이런 말을 했는데 이제는 안 할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만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사람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까? 사람을 때렸다가 죽였다가 악한 마음을 많이 품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죄가 가장 크다고 했습니다. 교만, 시기, 질투, 탐심 등은 하나님을 떠난 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만약 성도 중에 하루에 세 번만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천사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1년이면 1천 번이 넘는 죄를 짓게 될 것이고 80년이면 8만 번입니다. 8만 번 죄를 진 사람이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죄라고 판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눈동자 같이 보시는 분입니다.


또 한 가지 구약시대에 염소와 양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면 흠 없는 주님 성령의 충만 자체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할 수 있겠냐는 말씀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9:13-14

요나단이 백성들의 중보로 구원을 받았다면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의 죄는 먹보다도 검을 지라도 주홍빛보다 더 진한 그리스도의 피가 덮어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이 다 죽이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 죄책을 깨닫게 하고 오실 메시야를 요청하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으로는 죄인 밖에 될 수 없구나.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대로 심판하신다면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지만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심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새 피조물 되었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교만하지 마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18
하나님은 교만한자는 멀리 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매사에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 삶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 4:6
 
십계명 강해 (1)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사무엘상 강해 (22) 노블리스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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