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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강해(6) 세상 나라를 멸하심(6) 바벨론을 멸하심(2) 바벨론 왕국의 타락(2)   12-05-08
jcmm   3,922
 
다니엘서 강해(6)
세상 나라를 멸하심(6)
바벨론을 멸하심(2)
바벨론 왕국의 타락(2) / 3:19~30

몇 년 전 경주에서 고신세계선교사대회가 있었는데 거기 참석한 선교사님들 가운데 십 년 이상 된 선교사들은 의무적으로 세밀한 심리테스트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진행하는 소장은 스트레스지수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 지수를 100으로 잡을 때 선교사가 새로운 임지에서 초기 4년 동안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400 이라는 것입니다.
문화충격, 기후, 음식, 자녀교육, 사역 등등 전혀 생소한 많은 일들을 겪으며 그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400이 되는 선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교단이나 선교단체에서 4년 사역하고 1년을 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를 제대로 못해 중도에서 선교를 포기하고 본국으로 들어오는 가정도 생기게 되고, 과중한 스트레스로 현지에서 비정상적인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20년 가까이 안식년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의 수가 약 24,000명 정도 되는데 20년 가까이 되도록 안식년을 갖지 않은 선교사는 아마 저희 부부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만 요즘 쉼이 절실함을 몸과 마음과 영혼이 느끼고 있습니다.
‘쉬는 것도 사역이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올해 교회의 목표는 ‘가정 같은 구역, 구역 같은 교회’입니다.
이 목표는 담임목사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목회자가 되어 각자가 맡은 직분을 사랑과 섬김으로 실천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입니다.
담임목사 부재중에 교회가 오히려 부흥하고, 모든 예배와 성경공부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 좋은 안식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름이 끝나는 새 학기부터 한시적으로 저는 델리 교회를, 전철민 목사는 구르가온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효율적인 목회와 성장을 위한 시도이지만 두 교회는 별개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입니다. 매주 마지막 주일은 제가 구르가온 교회를 방문하여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송영애 담임목사 사모도 계속해서 델리교회와 구르가온교회 여전도회 성경공부를 인도할 것입니다.
송미현 간사 역시 델리교회와 구르가온 교회 새신자 관리와 심방과 성경공부를 인도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라며 카톡이나 이 메일로 자주 소식을 주고받도록 하겠습니다.

주보에 매주 설교 제목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강해를 들으면서 줄거리를 기억하면서 들었으면 해서입니다.
그래야 강해 설교 전체가 연결이 되기 때문에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조직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성경을 조직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단순명료한 확신 있는 신앙을 갖게 되고, 영분별이 생겨 무엇이 참 복음인지 이단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다니엘서 여섯 번째 강해입니다.
첫 번째 큰 제목이 ‘세상 나라를 멸하심’입니다.
다니엘서 2 장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장차 바벨론을 비롯한 그 뒤에 나타날 세 제국들즉 페르시아, 헬라, 로마로 상징되는 세상 나라를 멸하고, 장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구원받을 성도들로 이루어진 영원한 영적인 나라를 세우실 것과 그 나라를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에 대한 계획을 느부갓네살왕에게 금신상에 대한 꿈을 꾸게 하심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네 제국이 망하고 공중에 뜨인 돌이 태산을 이루었듯이 복음이 지금 세상천지를 뒤덮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남은 이루어질 일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세상 제국이 완전히 멸하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어 친히 하나님의 통치를 영원토록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인 것을 확증해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첫 번째 제국인 바벨론을 멸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지금 망하기 위해 망할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심을 경험한 느부갓네살왕이 황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관료들과 전 국민에게 우상숭배를 하도록 강요를 했고, 고위 관료들 역시 충성스러운 동료인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모함하여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고, 왕 역시 우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는 세 친구들에게 ‘어느 신이 내 손에서 너희들을 건지겠느냐. 만일 절하면 살려 주겠거니와 절을 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타협하도록 회유를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국의 이런 타락으로 인해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I. 풀무불 시험(19~23)

느부갓네살 왕은 두라 평지에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바벨론 제국의 정치인, 종교인, 법률가등과 제국의 식민지의 대표들을 초청하여 낙성식에서 절을 하게 만듭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율법대로 이 세 친구들은 절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절 한 번 꾸벅하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일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똑 같은 시험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교회 목사와 성도들 그리고 전 국민들에게 일본의 신사를 참배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을 국가 의식이라고 했습니다.
신사는 말 그대로 절간에 신을 모신 것입니다.
그 신은 죽은 사람들의 혼령들입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호국신사입니다
그 출발은 메이지유신당시 막부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친왕파 군사들의 혼령을 위로하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건립되었으나, 후에는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전사자들의 위패로 모셔 놓고,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의 주범으로 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14명의 1급 전범을 야스쿠니에 합사시켰습니다.
결국 신사참배는 죽은 혼령들을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범 혼령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귀신들 앞에 절하라고 1945년 6월까지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보다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이 세워졌습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각급학교와 각 가정에는 신단(神壇)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사참배에 동원된 인원은 조선신궁 참배자만도 1940년에 약 215만 9000명, 1942년에는 약 264만 8000명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대부분의 교인들과 목사들이 절을 했습니다.

이 신사 앞에 절을 안 하면 감옥에 가두고 고문했습니다.
그렇지만 소수의 무리들만이 그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거부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순교를 당했고,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투옥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교파가 제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입니다.
그래서 정통보수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교단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의 보호 아래 성장한 신학교와 교단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신학과 신앙을 가진 교회를 선택하는 것도 내 신앙에 중요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 앞에 절하느냐 마느냐, 즉 사느냐 죽느냐 풀무불 시험에 직면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 세 친구들에게 “만일 음악이 울려 퍼질 때 절을 하게 되면 너희들을 용서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이렇게 회유를 했을 때 이 세 친구들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왕이여 우리는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왕이 우리를 풀무불 속에 던져 넣는다할지라도 우리의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왕은 진노합니다.
만 천하가 보는 앞에서 왕의 명령을 모욕했고, 국가시책을 뒤 엎는 것이기 때문에 요즘 말로 하면 뚜껑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 보다 풀무불을 일곱 배가 더 뜨겁게 달구고 그 속에 집어 던져 넣으라고 명했습니다.
워낙 왕의 명령이 엄하고 급해서 이 세 친구를 붙들고 불 속에 던지려던 군사 몇 명이 그 자리에서 타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이 강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이 친구들에게 이런 가혹한 시험이 있는 것일까?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다른 거짓 복음은 다니엘서와 다르게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잘 믿는 보상으로 아무 시험도 없고, 건강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직장 생활에 형통하고, 사업이 잘 되고, 무엇을 기도하든지 기도하는대로 응답이 된다는 이상한 복음입니다.
그것을 값싼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들고 나온 것인 ‘오중복음-삼중축복’ 교리입니다.
이 복음은 십자가 없이 영광만을 받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교인들의 요구에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대형교회를 이루게 되고 그것을 본 수 많은 목사님들이 너도 나도 그 복음을 추종하게 되었습니다.
축복, 번영, 성공, 자기 개발 등 ......
그래서 교회들이 커졌습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병들게 되었습니다.
설탕은 영양가가 없습니다.
입에만 달 뿐입니다.
설탕만으로는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시험이 와도 흔들리고 신앙이 든든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무너집니다.
부평에 8 만 명이 모이는 어떤 교회가 있는데 그 중에 만 명이 신천지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만큼 신앙의 기반이 약한 것입니다.
제가 자부하기로는 이곳 델리에 신천지가 들어와 활개를 쳐도 우리 교회 설교를 듣고, 우리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한 교인들은 단 한 사람도 안 넘어 간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경을 조직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성도가 어떻게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이만희를 성령 하나님으로 믿을 수가 있습니까?

성경을 제대로 배우면 신앙생활에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를 믿어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고, 병에 걸릴 수 있고,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왜 시험이 필요한가?
어떻게 이 친구들은 풀무불 시험을 담대하게 이길 수 있었는가?
저는 이 친구들이 풀무불 시험을 미리 예상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시험 뒤에 어떤 일이 있을 것도 미리 알았다고 믿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미리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예언을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런 일이 있기 천 년 전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열방에 흩으실 것이며 그들이 그 열방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신4:27~28)

이런 일이 있기 백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침략을 당해 나라가 망할 것이며 왕족 중 몇이 바벨론에 끌려와 환관, 즉 높은 고위관직에 오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하고 사르지도 못할 것을 언약하셨습니다(사43:2)
성경을 통해 충분히 시험을 예상했다고 믿어집니다.

또한 시험을 예상했다는 증거는 다니엘서 2 장에서 다니엘과 이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 합심 기도함으로 왕의 잃어버린 꿈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도의 영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풀무불 시험을 앞두고 저들은 기도했고, 그 시험의 결과를 충분히 계시 받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아니하실찌라도' 삶과 죽음의 때를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부활을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시험을 담대하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시험의 결과를 미리 알면 얼마든지 큰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30절에,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풀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빨리 풀무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이 불신 제국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만 천하에 드러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은 필수과목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 못할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험은 다른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게 닥칠 때 당황하고 절망하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나 않았는가라는 극단적인 질문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시험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시험을 주시는 이유에 대해 야고보서 1장 2~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시험의 목적이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 시험을 주시기 때문에 시험이란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시험의 결과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II. 풀무불 속의 기적(24~27)

느부갓네살은 분하여 이 세 친구들을 풀무불 속에 던집니다.
그날 얼마나 불길이 맹렬했던지 이 세 친구들을 끌고 간 병사들이 불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세 친구들은 옷을 입은 채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타서 죽어야 할 이 친구들이 불속을 산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분명히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불 속을 산책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넷 이었습니다.
이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느부갓네살은 25절에,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고 했습니다.
이 순간에 다시 느부갓네살의 눈이 잠시 열렸습니다.
십여 년 전에 금신상에 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잃어 버렸을 때 다니엘이 그 꿈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며 재생해 주고 해몽까지 해 주자 보좌에서 내려와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하며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며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고 한 것처럼 그의 눈이 다시 열려 네 번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과연 이 친구들의 고백이 맞았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은 이처럼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믿음 또한 주십니다.
“그리하니하실찌라도 우리는 결단코 왕의 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순교적 신앙은 더 큰 구원을 이룹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은 체코 프라하였습니다.
거기는 평소 존경하던 ‘얀 후스’(Jan Hus : 1,372~1,415.7.6)의 동상이 구 시가지에 있습니다.
얀 후스는 체코의 신학자이며 종교 개혁자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나오기 백 년 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어려운 라틴어로 집전이 되던 예배를 평민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체코어로 드렸고, 성경과 찬송도 체코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프라하 대학의 총장이기도 했던 교육가와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부패한 로마 교황과 교황청을 신랄하게 비판을 하였고, 특히 비성경적인 면죄부 판매에 대해 반기를 들었습니다.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을 당하였고, 스위스에서 열렸던 콘스탄츠의회에 결정에 따라 1,415년 7월 6일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Hus'입니다.
‘Hus'는 ’거위‘라는 뜻입니다.
얀 후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거위지만 언젠가는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백 년후에 나타날 마틴 루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후스가 묶인 채 서 있던 발밑에서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그 불속에서 후스는 누구를 만났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그 불 가운데 임하여 ‘그리아니하실찌라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후스를 불 들고 천국으로 데리고 갔다고 믿습니다.
그의 순교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의 불씨가 당겨지게 되었고, 그의 영향을 받은 마틴 루터가 중세 천년의 부패한 천주교의 실체를 드러내고 개신교를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의 동상 밑에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
이 시대에 말로 교회와 신앙의 개혁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 모두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는’ 여러분들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임마누엘 성도 여러분~
풀무불 시험은 오늘도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결정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믿음의 선택을 하여 풀무불의 기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 땅에 존귀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역공과 나눔>

1. 하나님을 잘 믿어도 왜 시험은 찾아 오는가?

2.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시험을 주셨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었나?

3. 세 친구들은 어떻게 풀무불 시험을 극복할 수 있었나?

4.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나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전철민목사) 
다니엘서강해(5) / 세상 나라를 멸하심(5) / 바벨론을 멸하심(1) / 바벨론 왕국의 타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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