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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은혜 (전철민 목사)   12-06-26
jcmm   3,565
 
여호수아 12 : 1 ~ 24 < 돌아보는 은혜 >

 오늘 12장의 말씀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 눈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이 12장을 보면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마음으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이 지나간 과거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요?

1. 과거의 은혜
  본문은 이스라엘의 지나간 과거입니다. 전쟁을 끝마치고 그동안 정복한 나라와 왕들을 뒤돌아 보는 그들의 마음.  그들에게 12장은 과거의 모든 역사의 기록입니다. 오늘 기록을 보면, 이 12장은 그들의 수많은 전쟁들이었습니다. 한 두 나라와 전쟁한 것이 아니라  31개, 33개의 왕들을 무너뜨려 왔던 역사의 시간들이죠.  전쟁은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생명의 싸움입니다. 생명을 걸고 싸웠던 33나라의 전쟁. 또한, 이 12장의 전쟁들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요단을 건넌 다음에만 해도 7년간의 전쟁을 했습니다. 만약! 정확히 7년 후에 전쟁이 끝날거야! 이런 결과를 알고 왔다면, 버티는 것이 쉬울 수도 있지만,  이 전쟁이 언제 끝날줄 모르며 전진했던 순간들입니다. 정복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고 왔습니다. 지나 놓고 보니 7년이지 전쟁의 과정속에서는 끝날 시간을 모른채 왔던 어쩌면 막막했을 수도 있는 긴 세월 이었습니다. 또한 이 12장은 쉽지도 않았던 시간들입니다. 전쟁입니다. 가족중에 다친 사람도 있었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세월동안 수많은 고비가 왜 없었겠습니다.  깊은 상처와  가슴 아픈 기억하기 싫은 상황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분명 주신다. 그것은 확신했지만, 과정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갈등과 사건들, 어려움. 이 12장은 그들의 엄청난 고난들의 시간 고난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도 똑같으시죠 물론, 차이야 있겠지만, 똑같습니다. 사시면서 많이 수고하시죠. 특히나 인도라는 이 땅에 사시면서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작년 한 해 동안, 지나간 5년, 10년 다시한 번 겪으라고 한다면 절대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이 땅에서 수고하고 계심을 압니다.
 제가 봐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 대단하십니다. 방법은 달라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라는 이 땅으로 부르심을 받으셨잖아요. 하지만, 직장에서 기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또한 직접 사업을 일구시고, 현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시면서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여기계신 한 분 한 분 집사님과 성도님들 인간적으로는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대단하시구요. 잘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입니다. 
 요즘 만나시는 분들이 “목사님! 바쁘시죠! 힘드시죠!” 인사를 하십니다. 물론, 더위 때문에, 애 키우느라, 담임 목사님 부재중 해야 할 사역이 있어서, 또 외부 손님들이 오셔서 등 이런 격려를 해주시지만, 교회 성도님들에 비하면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눈물 흘리시며 애쓰시는 모습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여호수아 강해를 준비하면서, 저희 성도님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외치기는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약속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계속 외치지만,  집사님들 상황을 보면 저도 갈등하겠고, 저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이해가 되고 인정 하게 됩니다. 직장, 사업장. 가정.. 저라고, 뭐 하나님 계시니까.. 염려없어 늘 씩씩해.. 전진해. 아니요 어쩌면, 더 심한 갈등에 빠질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저에게 너라면, 어쩔래! 다시 되물어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7년의 과정을 보내면서 정말 많은 고난과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견고한 그 성 보고 놀라고, 아이성은 쉽게 봤다가 큰 코 닥치고.. 믿을만 하다고 생각했던 기브온은 뒤통수를 치고, 수많은 연합군이 한꺼번에 밀려오게 되고.. 정말 수고한 7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고난만 겪었습니까? 두려움에서 그쳤습니까? 막막하기만 했습니까? 그런 과정들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싸울 수 있었고, 하나 하나 물리쳤습니다. 전쟁 하나 하나가 고비였고,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봤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떠돌이 민족이 아님을 위로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아름다운 결과를 주신 하나님도 체험합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모든 전쟁을 마치고 느끼는 것이었을 겁니다.  12장의 모든 전쟁이 마친 그들에게 그 기간이 고통스러운 기간, 갈등과 고비만으로 끝나는 시간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된 지명들. 우리보기에는 그저 그렇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한 성읍 한 성읍, 이름 하나 하나 그 어느 것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 사건들은 없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갈등과 사건, 아픈 추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로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도 하나님은 이런 사건과 감사를 지금 여러분들에게 행하고 계십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세요. 자신의 이야기 사건 사고, 내 고생, 내 상처. 버라이어티한 나름의 삶이셨죠. 나눈다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중요한 것은 과거의 그 모든 것들을 다 통과했다는 사실입니다. 한 달 한 달  한 해 한 해 그 모든 사건들을 잘 통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월, 그 사건 속에 누가 계셨는지 찾으셨고, 고백하셨습니까? 여러분, 통과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표시입니다. 그 한 달 그 일 년은 은혜의 목록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여기 있는거 아닙니까?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인도에서의 사역을 시작할 때는 이미 결혼시기가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포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한 편으로는 결혼을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저를 이렇게 늦게 인도에 보내셔서, 상황을 더 악화 시켜가는가? 왜 지금 결단하게 하셨나? 당시에는 정말 포기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집사님의 기도처럼 바울처럼 되야 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임마누엘 교회에서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은혜였습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 같이 살아봐도 좋은 아내, 괜찮은 사모, 지혜로운 엄마라고 믿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개인적으로 이 인도의 상황이 처음에는 낙심이나, 포기를 주는 것이었지만, 역시 결과를 보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전쟁이 이 12장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전쟁입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지금 그들의 7년의 기간이나 다름없습니다. 많은 갈등과 괴로움속에 있지만, 함께하셨다는 고백, 아름다운 승리의 고백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주십니다. 수고와 고난이 클수록 은혜도 놀랍구요, 절대 잊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의 아픈 순간들, 답답한 순간들, 한계들 머리로는 안되지만, 믿음으로 바라보시면서 즐기십시오. 우리는 지금 은혜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한계만을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33개의 성들은 아픈 기억이 아니라 그들의 간증이었다는 것. 잊지마세요. 12장은 그들의 감사의 고백이고 축복의 표시입니다. 모든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감동입니다.
 
 바라기는 모이시면 서로 이런 은혜를 나누며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 하나님을 경험한 분들의 고백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고백을 들으며 하나님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 기대가 말씀과 체험을 통해 지금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의 고백이 경험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얼마나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의 입술의 간증이 새롭게 길을 가는 분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서로 모이시면 은혜를 나누십시오.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교제에 까지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2.  나누어진 두 부분 
 또한, 여호수아 12장은 중요한 교훈 한가지를 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정복을 당한 왕들과 나라들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요단강 동편에 있었던 왕들의 목록(1~6절) 이고, 두 번째 부분은 요단강 건너 서편 지역의 왕들의 목록입니다. (7~24절)

두 부분의 특징과 비교를 보면 
 1) 요단강 동편의 특징 - 요단 저편 (1절) 해돋는 편 (1절) 모세가 이끔 (6절), 2개의 왕을 무찌름, 기업을 받은 지파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6절) 
 2) 요단강 서편의 특징 -  요단 이편 (7절), 서편 (7절) 여호수아가 이끔, 31개의 왕을 무찌름, 기업을 받은 지파 (남은지파) (7절)

  사실 이 두 부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점령한 두 지역의 차이점 같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두 부분이 나누어지는 나눔의 기준을 보면 요단강입니다. 요단강 저편, 요단강 이편,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나눕니다. 
 요단강 동편은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려 할 때 요단 동편의 가장 무서운 두 왕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만납니다. 모세는 두 왕에게 요청했습니다.  그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모세는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통과 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싸움을 걸어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전쟁이 이 요단 동편의 전쟁입니다. (민 21장 21절~24절) 결국, 그들은 강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전쟁에 용맹하게 싸웠던 두 지파 반이 전쟁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그 땅의 분배를 요구하고 그 땅을 분배 받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 동편 땅은 요단을 건너지 않는 땅. 왜 요단을 건너지 않은 그 땅을 요구했을까요? 
 그들의 관심사는 생계를 잇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땅, 목초지가 풍부한 땅, 복잡하지 않은 땅. 살기에 좋은 땅. 그 땅에만 관심을 가지고 누리려 했던 두 지파 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거나, 하나님 명령 따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그 두 지파 반은 다른 지파들과 달리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3장 13절을 보면 13:13 -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은 오늘 본문 5절에 나오는 요단 동편의 땅입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점령했다고 한 지역입니다. 다시말하면, 다 점령한 것 같았으나 결국, 쫓아내지 않은 것입니다. 
 쫓아내지 않은 이유야 당연히 저들의 관심사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땅의 사람들이 생계적으로, 지내기에 이득이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결국 시편기자는 106: 34 - 37절에서 평가합니다 .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라고 결과를 고발합니다.
 요단 동편땅을 얻은 이유도, 그 땅의 족속들을 멸하지 않는 이유도, 자신들의 이득과, 생계 문제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관심없고, 요단강을 건너고 싶지도 않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중요합니다. 요단강은 외국의 수치가 죽었다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요단강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강입니다. 요단을 건넌 그들은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즉, 우리는 죽었다. 이제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시작이 되며, 새로운 삶의 방법, 삶의 모습으로의 출발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들의 옛모습 옛수치는 죽고, 이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지파 반은 요단강을 건너지도 건넌 후의 삶을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요단동편의 땅을 얻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생계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지, 실제 약속은 관심이 없던 사람들입니다. 반면, 요단강을 건너 요단 서편의 땅을 정복한 그들은 진정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생계를 위해 살았던 동쪽의 명분자들, 약속을 위해 살았던 서쪽 사람들.
  나중에 이 동쪽지역은 사라집니다. 이들이 받은 땅은 본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땅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타락한 곳이 되었고 그 동편 땅을 빼앗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명분이 아닙니다. 예수믿는 다고 하면서 명분만 내세우기 쉬운 오늘날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명분을 좇는 분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다닌 세월 자랑하고 직분 자랑하고, 성경의 지식을 자랑하고, 큰 교회를 다녔던 것을 자랑합니다. 명분만 내세우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자세히 살피면 하나님 없는 인생의 모습이 너무 많습니다. 껍데기 뿐입니다. 교회가 시대를 따라가고, 오늘날 문화를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명분으로만 그치면, 교회는 타락해집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심각하죠.
  하나님의 백성은 적어도 요단을 통과한 자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가슴 속에서 십자가의 전율이 없다면,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이 없다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나님에 대해,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지금 여러분에게 성령을 왜 보내셨는지. 이런 생각 없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시다면 명분론자입니다.
 다른 종교처럼 예수님이 나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윤택하는 분으로만 믿고 바라본다면, 명분론자입니다. 겉으로 축복스러워도 요단을 통과하지 않으면, 십자가 통과 하지 않으면,  축복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가 나와 별반 다를게 없는데요.

 여러분! 다시한번 자신에게 깊이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하시면서 십자가 사건이 지금 여러분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십자가로 인한 구속의 사건이 지금 여러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십자가 사건과 내 삶에 아무 연관이 없다. 그렇다면, 교회 동아리 모임하러 오신 것입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의 모습을 보세요. 힘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던 그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갔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생계를 위해, 이득을 위해. 여러분! 명분론자의 모습으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지난날을 돌아보십시오. 여리고를 지났고 아이를 지났고, 남방왕들을 물리쳤고, 북방 연합군을 잘 물리치셨죠.. 또한, 지금도 그 전쟁 가운데 계시는 줄 압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수고와 무거운 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우리에게는 은혜의 고백들 감사의 고백들로 자리 잡습니다.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잘 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싸움에 꼭 기억할 단어는 하나님의 그 사랑, 그 은혜, 십자가, 구속. 이 단어들입니다. 혹시 예전에는 귀한 단어들이 지금은 책갈피처럼 책속에 접어두고 감추어진 단어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이 귀한 단어들이 여러분 마음에 살아있지 않다면, 하나님 바라보는 생활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의식하면서 생활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명분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겉에 씌우고, 내 힘자랑, 내 명예자랑 하고 계실 것입니다.
 다시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으로 빠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업분배 (전철민 목사) 
가나안 전쟁의 완성 (전철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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