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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지파의 땅 분배 (전철민 목사)   12-07-23
jcmm   5,130
 
여호수아  16:1~4, 17:14~18    요셉 지파의 땅 분배
 
 여호수아 14장부터 우리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한 땅을 분배하는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이 가나안 땅의 분배는 옛날 야곱이 열두 아들들을 축복할 때의 배경과 그 축복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 48장,49장과 함께 여호수아의 땅 분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예언하신 부분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땅 분배에서 어느 지파가 제일 먼저 분배를 받았습니까? 유다지파입니다. 14장과 15장에 유다지파 하나를 위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16장, 17장은 요셉지파의 땅 분배 기록입니다. 그리고 18장, 19장 두 장에 나머지 7지파가 기록이 됩니다. 이 땅 분배의 순서에도 영적인 우선순위가 담겨져 있습니다.

1.  에브라임이 먼저 기록된 이유.
 특별히 오늘 16장, 17장 요셉지파의 땅 분배 기록에도 특이한 우선순위를 볼 수 있습니다. 16장은 에브라임 지파 이야기 이며 17장은 므낫세 지파 이야기입니다.
16: 5절 - 에브라임 자손의 그 가족대로 얻은 것의 경계는 이러하니라 
17: 1절 -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그런데 사실 장자는 므낫세 지파입니다. 하지만, 형보다 동생이 먼저 기록이 됩니다. 16장은 동생 에브라임이 기록이 되었고 17장은 형 므낫세가 기록됩니다. 왜 형보다 동생이 먼저 기록이 되었을까요?

  창세기 48장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삶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형들을 용서하고 온 가족을 이주시켜 살게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을 날이 가까이 오자 요셉의 자녀들에게 축복합니다. 당시에 장자에게는 오른손을 얹고, 차자에게는 왼손을 얹어 축복을 했기 때문에 요셉은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 쪽에 앉히고, 둘째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손 쪽에 앉혔습니다. 그런데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 야곱이 손을 엇갈려서 동생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었습니다. 이것은 축복의 장자 자격을 동생 에브라임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실수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잘못하셨습니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다 알고 축복한다  아우가 형보다 더 큰 자가 될 것이다. ” 말하면서 에브라임을 앞세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대로 오늘 땅의 분배의 순서도 에브라임이 먼저 하게 됩니다.
 에브라임은 므낫세보다 먼저 땅을 분배받을 뿐 아니라, 그 땅은 이스라엘 핵심부를 차지합니다. 그 땅은 어느 땅보다 비옥하며 다른 지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며 또한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중심지였던 실로가 있는 곳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북쪽 10지파의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사 7:2~17) 

 우리는 에브라임이 장자 므낫세 보다 앞서는 이 축복의 이야기 속에서도 힘의 논리나 인간의 이치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결정하심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장자인 므낫세를 택하지 않으시고, 차자인 에브라임을 택하신 것과 같은 사건은 성경속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아들중에 둘째, 아벨은 용납하시고 첫째, 가인은 거절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 첫째, 이스마엘을 거부하시고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 이삭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쌍둥이 중에서도 형 에서는 거부하시고 동생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 본문중에 17:3~6에는 므낫세의 땅 분배 과정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즉, 여자들에게) 땅을 분배하는 사건까지 나옵니다.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기업으로 받을 자가 사실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용기로 땅을 요구하는 딸들에게 하나님은 기업을 주십니다. 기업은 남자에게만 속해지는 것이지만, 이 사례는 법까지도 바꾸시는 겪이 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이치나, 전통, 당연한 상식을 부수시는 하나님.. 이런 섭리는 우리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14장에서 갈렙을 선택하셨던 하나님! 선민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실줄 알았지만, 이방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 또한, 장자를 택하실 줄 알았는데 차자를 세워주십니다, 에브라임을 선택하신 하나님! 그리고 남자들을 통해 특권을 주신다고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여자들에게도 땅을 분배하셨습니다. 여자들에게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 -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뜻입니다. 하나님께 전통이나, 이치, 법은 모두 뒤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시죠!  여기서 우리는 약한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모습까지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늘 인정해드리고, 그 분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오래 하다보면, 사람은 교회안에 머무는 전통이나 율법적으로 알고 지내왔던 이치와 습관이 우리 생각에 자리잡기 쉽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선민, 장자, 남자여야만 한다는 이런 의식을 갖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특권 의식입니다.
 교회에 이권이 자리잡고, 텃세가 있고, 자신의 프라이드만 자랑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쉬운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주권대로가 아니라, 내가 배운데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만하기 쉽죠, 이것은 목사인 저부터 특별히 신앙생활 오래 하신분 들에게 침투하는 사탄의 좋은 전략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늘 새로워지지 못하기 때문에 변하는 모습입니다.  교만과, 하나님을 모르는 착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게 되신 분들 오래되신 분들은 조심하세요. 잘못하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신앙생활 시작하신 분들을 감싸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착각하신 분들이 잃으실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늘 겸손하셔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맞추어야 하고, 교만하지 말고, 약한 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고 겸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며 세월을 자랑하는 분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제일 위험합니다. 말씀전하고, 강단에 서있기 때문에.. 저부터 제발 겸손해야 할 것이고, 모든 사건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인정해 드리며, 겸손한 자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여기있는 누구보다 낮아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중고등부, 어린이들도 양육을 위할 때 빼고는 함부로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인격입니다. 

2. 요셉지파의 불평
1) 불평하는 자
오늘 땅 분배를 하는 과정에서 요셉지파가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7: 14~18절)
요셉지파가 여호수아를 찾아가 말합니다. “우리 기업의 지파의 규모에 비해 분배된 땅이 너무 작다. 왜 나한테는 한 분깃만 주냐”  따지는 겁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그렇게 작다고 생각하면 개척해 나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요셉지파의 반응은 산지는 넉넉하지 못하고, 그곳에 철병거. 즉 철로된 전차가 있어서 힘들다는 핑계를 댑니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개척하라고 다시 권면합니다.
 
요셉지파의 모습을 보시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요셉지파의 모습은 한마디로 불평입니다.!  요셉지파의 여러 상황을 볼 때 그들의 이야기는 불평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먼저 그들이 분배받은 땅은 사실 작지 않습니다.  다른 지파의 땅보다 훨씬 큰 편입니다.
 원래 요셉지파는 한 지파인데 두 지파로 간주 되었죠. 므낫세와 에브라임 .. 거기에다가 므낫세 지파중에 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요단 동편 땅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1지파 반이 차지하는 땅치고는 작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도 사실 잘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받은 땅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운데 지역을 분배받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땅은 이스라엘 핵심부이며 다른 지파의 땅들보다 비옥하며 다른 지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입니다. 물론, 아직 개척되지 않는 땅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요구가 어처구니 없이 불평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비뽑기를 통해서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땅에 대한 불만과 그들의 요구 이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작다고 생각하면 개척하라”고 했습니다. 이 때, 철병거의  핑계를 대는 것은 결국, 그들의 게으름과 소심함과 비전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솔직한 심정은 개척하기 싫다. 는 것이죠! 유다지파의 갈렙과 비교되지 않습니까?
  거인들과 싸우기 힘든 산지와 거대한 성읍을 향해 전진했던 유다지파와 달리 핑계에 핑계를 만들면서 안주하는 요셉지파.  불평하는 사람의 특징을 보면 늘 그렇습니다. 항상 핑계 거리가 있죠.
  쉽게 말하면, 요셉지파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주셨던 비전에 대해 게으른 것입니다. 그리고 열정이 없습니다.
 
 요즘 여호수아를 통해 계속해서 열정과 비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저희 청년들과 30대의 젊은 나이에 73개의 꿈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김수영씨에 관한 삶을 보려고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중고등부나 집사님들도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함께 12월까지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5개월 후의 변화되어 있을 청년들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 목표에는 영적으로, 건강적으로, 자기개발적으로 변화될 일을 구체적으로 적고 노력하며 체크하려고 합니다.
 청년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이유와, 짧지만, 5개월의 꿈의 목표를 세운 이유는 지금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불평과 게으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인데, 인도라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소극적이며 마냥 느려지고 안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전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해 준비를 해 봤습니다. 우선 5개월이지만, 계속해서 1년 5년 10년 20년 계획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날 통해 하실 일이 참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조사에 보니 21일만 매일 반복하면 그것이 몸에 밴다고 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핑계와 불평을 만듭니다. 그것이 몸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열정을 쏟으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대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순간 도전받아도 그 순간으로 끝나면, 결국, 다시 돌아갑니다. 익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육체도, 운동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듯. 섬기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베푸는 것도, 비전을 위해 나아가는 것도. 꾸준히 열정을 쏟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7년동안 아니 계속 동행하시면서 비전을 주셨고 소망을 주셨으며, 전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정착단계에서 결국, 의지가 없어 행동을 하지 않는 요셉지파를 보게 됩니다.  의지가 없어 순종하지 않는 것은 능력이 없어 순종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요셉 자손의 문제입니다. 
  이런 의지가 없는 행동, 비전없는 행동은 16장 10절 과 17장 12~13에도 나타납니다.
수 16:10 -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 에브라임은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했습니다.
수 17: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수 17: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므낫세는 처음에는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해진 후에도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결국, 쫓아내지 안했다는 것입니다. - 말씀의 부재이고, 비전을 따라 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지 마시고, 핑계하지 마시고, 손 놓고 포기하지 마시고 지금의 상황에서도 열정을 쏟으세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작게라도 전진하세요. 하나님께서 각자 각자에게 지금의 사명, 지금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의지력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요셉족속이 받은 복
한가지 더 요셉지파의 불평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복에 대해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4절 -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그들의 불평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제비 뽑아 땅을 분배 받았는데도, 자기 몫을 더 달라고 합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쉽게 적용하면 “예수믿고 나서 사람들이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자녀라는데 왜 복을 안주는가?” 즉, 예수 믿으면 복 받는 다는데, 왜 복을 안주시나? 와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나 이런 기도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특별한 복이 임해야 한다는 것.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 요셉의 삶을 보면 그의 삶 속에 형통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형들로 인해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 장군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케 되었더라. 라고 합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니 형통케 되었더라. 라고 합니다.
 여러분, 요셉이 형통하다고 했을 때는 비참하게 종으로 팔려갔을 때였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통했더라. 라고 말하죠.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래서  형통이란 뜻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은 성공했을 때, 뭔가를 이루었을 때,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드러났을 때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셨네..” 이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 형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복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 이것이 복입니다. 요셉지파에게 주어지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복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줄 압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가져야 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많이 가져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성공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어디 그것이 복이라고 이야기 합니까? 어디에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까? 은연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생각은 세속적인 생각이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제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원천적인 복은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그것이 복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빌 4장의 13절 -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말씀이 예수님 빽으로 우리는 어떤 성공도 이룬다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 해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고난에 처하고, 궁핍에 처하고, 부자가 되더라도. 또 어떤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도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감당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능력이죠.

 그리스도인에게, 우리에게 - 부요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충만히 내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사신다는 것이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천적인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어떤 곳을 가든..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교해보세요.
 영원히 죽을 자리에서 영원히 살 자리로 바뀌었다는 것.  영원히 살게된  이 복과 이 가치와 ..이 땅에 살면서 1000만원 더 버는 것과의 가치가 같습니까? 비교 자체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셉지파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에 들어와서.. 땅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와서. 이미 주셨는데도 땅을 더 달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믿음대로 정복하러 가면 되는데..  복의 중심에 들어와서 복달라고 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개척이란?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다 가졌기 때문에 그 가진 것으로...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길을 알려주는 것. 섬기고, 베푸는 인생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개척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것을 얼마나 나누고 얼마나 용서하고 얼마나 긍휼이 여기고, 베풀고 계십니까? 이것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가치있는 삶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이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전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리기는커녕.. 자꾸 세속적 잣대로 보면서 달라고 하며 다 가지고 있으면서.. 더 달라고 하는 것.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까..
여러분! 진정한 보람과 감사는 소유하고 누리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연약한 사람이 힘을 얻고, 변화되고.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삶으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그것이 개척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만민을 살리도록 하기위해 이끄셨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 그와 같은 순종의 삶을 살지 않으면, 가짜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얼마나 이 삶을 누리고 있습니까? 꼭 점검하세요.

 오늘 요셉지파를 통해서 사실 우리는 실망을 하게 되며,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큰 복을 받은 지파입니다. 그런데. 진정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들입니다.  의지력이 없고 비전과 개척정신이 없었던 안타까운 모습, 진정한 복을 놔두고 세속적 복에 매여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이웃에게 벼랑 끝에 있는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지혜, 건강한 체력, 알고 있는 정보,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 보내시기 바랍니다.  잘난체 하지 마시고요,  남을 기분좋게 하는데. 살리는데 쓰십쇼.. 그만큼 우리는 다 가졌습니다. 물량적 기준에서 보니까. 자꾸 없다고 안가졌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다 가지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 있든지..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은 형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용하셔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가난과 부의 경계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합니다. 잘살고 못사는 기준이 뭐가 중요합니까? 세속적 기준을 버리세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이 어쩔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난의 자리에 병든자리에 높은 자리에 세우십니다. 자신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이 경계는 무시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어떤 순간에라도 흘려 보내시기 바랍니다.
 
땅 분배의 마무리 (전철민목사) 
유다지파의 땅 분배 (전철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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