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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고별설교 Ⅱ (전철민 목사)   12-09-17
jcmm   4,920
 
수 24 : 1 ~ 16  여호수아의 고별설교 Ⅱ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 여호수아가 죽기 직전에 하는 마지막 고별설교입니다. 이스라엘에 현재 상황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표현할 만큼, 신앙의 최전성기입니다. 놀라운 가나안의 승리를 하나님께서 모두 이끄셨고, 주신 이 땅에 정착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빛나는 이 시기에 여호수아는 경고의 메시지로 고별설교를 합니다. 자신의 마지막 미션을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죠. 지난주에는 지도층에게 설교했고,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는데 설교의 주 메시지는 이 백성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는 것. 이방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망할 수 있다는 자극적 경고죠.

 1. 하나님의 하신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선포하는 장소는 세겜입니다. 백성들을 세겜에 모으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야곱이 단을 쌓았던 곳이 세겜이고.(창3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서 그들의 헌신을 재다짐한 곳도 세겜입니다. (수8:30~35)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겜은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와서 여호와께 단을 쌓고 첫 예배를 드린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시초죠, 이방신을 섬기던 아브라함의 가족을 불러 이끄셔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했던 장소.  (창12:6~7) , 그러므로 이 땅은 그 조상의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모여진 특별한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그들이 어떻게 축복을 받게 됐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세겜은 특별한 의미있는 장소입니다. 과거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되새기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세겜 에서 다시 한 번 그들의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에 대해 이제 선포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이다. 위에서 말한것처럼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던 조상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입니다..(2~4) 이스라엘의 근본은 우상숭배의 삶이었는데 그런 아브라함을 이유없이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까닭없이 택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워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냥 이스라엘을 택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입니다. (5~7) 출애굽은 이스라엘 역사의 근간이 되는 사건이며, 홍해 사건은 하나님이 얼마나 큰 능력으로 그 백성을 구해내셨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노예들에게 자유를, 쫓김속에서도 구원을 주신 하나님

 세 번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 (8~10) 하나님은 요단 동편의 아모리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계속 인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모리의 두 왕을 멸절시켜 땅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모압 왕 발락과 브올의 아들 발람의 궤계를 꺽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10절)

 네 번째, 땅을 주시는 하나님. (11~1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이후 여리고 전투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전투를 이기게 하셨고, 결국은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모두 기업으로 나누어 주신 하나님입니다. . 이 모든 승리와 땅의 기업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도적인, 주권적인 역사였고 섭리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선조들부터 지금까지 여러 세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 하며 그 백성이 하나님에 대해 머릿속에 새기도록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을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분이 누구인지 꼭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야 할 너무 너무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 저기 치우치면 안됩니다. 하나님 그분만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볼 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사실 전체를 볼 때 고만 고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세상에서 부딪힐 때는 절대 가볍게 보지 마세요.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보면 이제 됐다 했을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은 영적 전투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너무 쉽지만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너무나 중요합니다. 매일 되새길 수 있다면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 혼자가면 매우 만만하게 봅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들이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만 해도 앞으로도 이끄실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영웅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위대한 인물음 없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만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을 잘 기억하는 자가 위대해 집니다. 여러분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놀라운 대가를 치르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어떤 길을 거치고 어떤 일들을 통과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되새겨 보세요. 우리가 수고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우리가 수고한 것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14~33 절까지 중점적인 단어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섬기다 라는 단어입니다. 15번이나 이 말을 사용합니다.
 이제 가나안 정복이 거의 끝나고 여호수아는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데 이 백성이 너무나 연약하거든요. 아무리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이방 나라에 가지도 말고 그이름을 부르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혼인도 하지 말라고 해도 100% 죄인인 인생은 세상과 연합할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포기하고, 쉽게 타락하고, 쉽게 세상을 기웃거립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도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조금 재물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면 다들 매너리즘에 빠지고 예배의 감격이 식어집니다. 형식적이고 무감각한 예배를 드리게 되죠.  그래서 여호수아의 호소는 오늘 본문에 계속 반복이 됩니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 여호수아의 호소
 여호수아는 3번씩이나 강력하게 호소하며, 강하게 명령하는데 여러분들에게 하는 호소라고 생각하시며 마음판에 새기셨으면 합니다. 
 14~15절 여호수아의 첫 번째 호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섬기던거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죠. 왜 여호수아가 이렇게 호소했을까요?  안들으니까.. 잘 안듣습니다. 사실 당시 고대근동에서는 다신교였습니다. 신이 참 많고 보편적으로 그 신들을 인정했습니다. 지역마다 신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살던 곳에서는 자신의 신을 섬기고 다른 지역에 가서는 그 지역 신을 존중하고 경배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한 명이라고 고집한다는 것은 무례한 일이며 교양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점에서 여호수아가 오직 하나님을 섬기라 촉구하는 것은 그 동안의 고대근동의 관행에 맞서서 싸우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당시 관행으로 볼 때 도전적이시죠 . 오직 한 분 여호와를 섬기든지 아니면 다른 신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그들중에 이런 관행을 인정하고. 이방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랑이시고, 이스라엘은 신부와 같기 때문에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 이후의 역사를 볼 때 이스라엘은 계속 이 두 가지를 함께 붙잡으려 했고 갈등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절정이 갈멜 산에서 이루어진 엘리야 한 명과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과의1 : 850 의 대결이죠. 그때도 엘리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냐, 바알이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만 택해라. 양자택일 하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풍요의 신 바알도 섬기며 살면 더 좋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16~18절 이제 백성이 대답합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 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 이심이니이다 하니라.
 
 백성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길 생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은혜.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여호와를 섬긴다고 결심합니다.  백성의 대답은 전혀 손색이 없는 진심어린 대답으로 들립니다. 믿음이 가장 좋다는 이 시점에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백성의 이 말을 들으면 그들은 초점이 틀렸습니다. 그들이 섬긴다는 이유가 뭡니까?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는 하나님깨서 보호하셨고, 큰 이적을 행하셨고, 쫓아 내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여호수아의 경고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9~20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호소할 때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안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에 맞춰서 그들이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지만,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 때문에 하나님을 당연히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니거든요.

여러분! 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을 아는 성품에 맞춰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에 믿음의 초점을 맞추면 시험과 고난이 올 때 의심합니다. . 아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으신 것 같은데. 능력이 있으시긴 하나..생각합니다. 축복과 능력만 바라왔으니까... 대부분의 시험이 드는 이유는, 하나님의 손을 보고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시험이 들죠. 하나님의 마음, 성품에 맞추는 사람은 고난의 때에도,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에도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 후에는 나를 정금같이 세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은 거룩, 질투 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19절에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는 하나님 (본성)이라고 하죠.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본성은 거룩이십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죄가 없으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를 이끄시고 가야 합니다. 내가 섬기긴 뭘 섬깁니까, 내가 하면 다 망칩니다. 실패합니다. 나는 못해요. 하나님이 해주셔야지, 그냥 우리는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세요 죄는 안가르쳐줘도 잘 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우리가 뭘합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야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우리를 주장하십니다. 늘 내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신양생활이 짐, 피곤함, 몇십년 믿어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난미의 은혜에 비하면, 무슨 일을 해도. 그 사랑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누가 잘난냐 부추긴 적도 없습니다. 비교해 봐야 도토리 키제기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질투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지나침을 표현한 것입니다. 질투는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는 것. 하나님은 이세상에서 나만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신다는 거죠. 질투하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부부가 두루 두루 사랑하는거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하니까? 그 중에 나쯤이야. 하시는 분이 계신데, 아닙니다. 나만 사랑하시듯 우리 개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디에 맞추고 계십니까? 성품에 맞추세요.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아가실수록, 세상에 절대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20절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보면 사랑하시는 표현인 것입니다.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이 사랑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 줄 아니? 네가 내 손에 붙들리는 한. 어떻게 해서라도 끌고 간다. 성경에 나오는 지도자들 중에 잘난 사람이 없다. 아브라함, 모세, 야곱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어올라가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누리는 차원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이 하셨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자 이제 이런 여호수아의 도전앞에 백성들이 또 대답합니다.
21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아닙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섬기지 못한다. 백성들은 섬긴다. 섬기지 못한다. 섬깁니다. 3번째 까지 간다음  이제야 여호수아가 백성의 결단을 인정해줍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 증인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이제 이방신들을 치워버려라. 명령을 합니다. 23절에 말을 합니다.
 23-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께로 향하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집요하게 다짐을 시키는 것은 이것보다 중요한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유언입니다. 그리고 나서 25절이하에 언약을 체결하고 율례와 법도를 세웁니다.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언약 갱신까지 원했던 것은 그들이 구체적인 행동과 진실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언약 갱신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게 결단하고 고백했다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 여전히 이방 신을 제하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장담할 수 없는 인간임을 아셨으면 합니다.  영국의 BBC 라디오에서 영국지도층 인사 천 명을 대상으로 20세기 말 기독교 신앙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지도층 인사 중에서 103명의 성지작들 대부분이 창조론과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나왔습니다. 영국성공회,, 카톨릭, 개신교, 람리교 지도자 103명 중에서 하나님이 6일동안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단 3명이고, 80명은 믿지 않는다. 나모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는 성직자는 13명 그쳤습니다. 오히려 정치인들보다 더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도 4분의 1에 불과 했습니다. 세계선교를 담당했으며, 세계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캐리가 영국 출신이고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영국출신입니다. 얼마전까지도 마틴 로이드 존스나 존스타트 같은 유명한 학자들이 영향력을 미쳤던 나라인데 그 영국의 성직자들 중 대부분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뜨겁게 타올랐던 영국이 지금은 많은 예배당들이 박물관으로 전락했고, 극소수만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안믿는 다는 것이죠. 뭐 비단 그곳만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도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1) 하나님의 성품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계신가요? 창조주, 전능하신분, 구원자. 우리가 설교를 많이 듣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기본적인 답은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오늘날 잘 안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능력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인도오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새벽기도도 없고, 수요 예배도 없고, 금요 기도회도 없고, 구역모임도 그렇게 강하게 부담주지 않잖아요. 여러분, 사탄에게 속고 계십니다. 상황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저도 사실 속고 있습니다. 물론, 상황이 한국과 같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의 마음을 접어버리는 건 아닌지.. 저도 새벽기도 없고, 금요기도회 없으니까. 처음에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예배의 자리가 많이 없으니까. 좋은게 아니더라구요. 계속 후퇴하는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못느끼십니까. 느끼시잖아요.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관심을 두세요. 하나님의 손, 받을 것에만 관심갖지 않도록. 그래서 에배 자리가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교회 한 번 오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그러더라구요.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는데 여러분들이 하나님 믿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성령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지 이건 기적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은혜로 간신히 살아가는 여러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 내면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차례나 호소하고, 권고하면서 확인하는 것이 우상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많은 우리 내면의 우상들속에서 싸워가고 있습니다. 내면의 우상이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우상입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 국회의원이 약 300명이고 그중에 50%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볼 때 신앙 양심을 파는 국회의원이 많다는 것을 찾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내면의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그러니 스스로 잘 할 줄 압니다 헌금하고, 예배드렸으면 할 일 다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날은 직업이 가장 큰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에 손해가 된다면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의 성공이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우상이 자리잡혀 있는지요.

 3). 내가 하면 안됩니다.
  오늘 여호수아의 고별설교를 보세요. 23장도 그렇고, 지금 24장에서도.. 여호수아는 그들이 하나님을 전쟁에서 100전 100승하겠금 인도하신 그 경험을했어도.. 하나님을 알고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을까봐 죽기 진전까지.. 마지막 까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방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만 섬겨라.... 지금 이스라엘은 최고의 믿음속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계속 반복으로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는 안됩니다. 내가 잘하겠습니다. 잘 못한다니깐요, 하나님께 나가는 것도 내가 뭐 잘해보려고는 나가지 마세요.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역사에는 주인과 주인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 과거로부터 시작해 약속의 땅을 정복한 시점까지 역사를 더듬어 내려오시면서 그분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현주소가 있기까지 그 배후에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의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렸던 것,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안식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곧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주인공인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끄시는 분,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철민 목사) 
여호수아의 고별설교 1 (전철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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