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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전철민 목사)   12-10-30
jcmm   3,918
 
막 4: 35 ~ 5:20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만, 또는 예수님도 인간이셨다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분은 완벽한 하나님이셨고, 완벽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모든 인간의 고통과 기쁨, 외로움등 인간의 감정과 육체적 고통도 33년 이 땅에서 계시면서 모두 느끼셨던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나타내고 있습니다.
 
  배를 강단삼아서 물가에 있는 큰 무리들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날이 저물 때쯤 제자들과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주님은 낮동안 설교하신 것 때문에 무척 지치셨습니다. 그래서 배에서 깊이 주무십니다.  그런데 한 참을 가시다가 제자들과 주님이 타신 배가 갑자기 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 시기는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심한 폭풍이 일어날 때가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높고, 물결이 배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습니다. 배가 뒤집힐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죽겠다고 난리가 났죠. 그런데, 주님은 아주 깊은 잠에 빠지셔서 요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죽겠다고 예수님을 깨웠는데 깨어나신 주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큰 바람도 멈추고, 바다도 잠잠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없어 무서워 함을 나무라십니다. 왜 .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제 바다를 건너시고 주님은 거라사인 지방이라는 곳으로 오십니다. 거기서 무덤사이에 있는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십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은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시는데 귀신은 자신들을 쫓아내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 이름을 묻자.. 귀신이 대답하기를 군대라고 말합니다. 군대와 같은 수의 강력한 귀신입니다. 결국, 귀신은 돼지떼에게 들어가기를 원하고 주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이 들어간 돼지떼는 비탈길로 달려들어 몰사하게 됩니다. 그 수가 2000마리나 됩니다. 그리고 귀신들렸던 사람은 온전해졌습니다. 이 사건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경하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님을 두려워 하게 되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요청합니다. 귀신이 떠나간 사람이 주님이 떠나실 때 주님을 따라가고자 하지만, 주님은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하시죠. 결국, 그는 데가볼리에 이 사실을 전파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두가지 사건입니다. 먼저 이 두 사건에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1.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1) 온전한 평강을 가지신 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님의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쁜 사역으로 너무 피곤하셔서 깊이 주무시는 모습. 주님도 바쁘셨고, 피곤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하셔도 풍랑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주무실 수가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 잠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님이 그 상황에 주무시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제자들의 호들갑과 주님의 주무시는 것을 분명하게 대조하여서 기록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평안함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요즘, 디왈리를 몇 주 남기지 않고 집주위에서 아이들이 폭죽을 터트리기 시작해서 깜짝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에 깨지 않고 곤히 자는 아이를 보면서 요즘 예민해져서 잘깨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저와 비교하면서 복잡해하지 않고 단순한 모습에서 평온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난리가 느도, 어떤 복잡한 일 속에서도 평온하신 주님. 여러분, 주님은 온전한 평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2) 자연을 지배하시는 분
  뿐만 아니라 주님은 자연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연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잘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행기 타는 것이 싫어서 한국에 가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행하는 중에 기류를 탈 때의 상황 때문입니다. 비행기 속에 있는 제가 태풍속의 종이 비행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비행기가 기류때문에 흔들릴때면 저도 모르게 간절한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자연앞에 인간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요즘들어 지구촌의 뉴스를 들을 때면 더욱더 실감하게 되는데 홍수와 폭설, 열대현상등 세계 곳곳이 자연앞에 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올 해 만큼 태풍의 큰 타격을 입은 해도 없을만큼 농촌, 어촌에 계신 분들은 절망과 좌절속에 계십니다. 자연의 위력앞에 인생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당시의 제자들이 지금 우리의 상황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본 것이라고는 갈릴리, 예루살렘 지역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갈릴리 바다의 광풍은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배가 뒤집힐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에 잠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제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죽을 것 같아서 주님을 깨웁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상황에서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면서 여러번 주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놀라운 비밀의 말씀을 들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모든 경험, 말씀의 감동이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예배드리고 감동받고 주님의 능력을 봤고 주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광풍이라는 현실에 우왕좌왕, 호들갑을 떱니다. 
  주님을 따라다니지만, 아직 연약한 그들.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후에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주님이 누구십니까 필요하시다면, 자연의 이치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정말 필요하시다면, 해를 멈추십니다. 정말 필요하시다면, 해가 반대로 기울게도 하십니다. 정말 필요하시다면, 우주의 이치도 바꾸십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은 해를 멈추셨고, 히스기야의 기도에 해가 뒤로가게도 하셨습니다. 자연을 다스리시는 이런 사건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입니다.
 오늘날에는 가능할까.. 나에게도 가능할까.. 옛날이냐, 오늘날이냐 나에게도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냐 원하시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현실의 광풍에 이런 불안한 모습으로 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의 감동, 찬양의 은혜, 말씀속에서의 결단 이 모든 것들이 현실만 다가오면 묻혀버리는 사람들 혹시 내가 아닙니까?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과 함께 하면 풍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해도 풍랑은 있습니다. 오늘 주님도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셨습니다. 주님과 같이 하는데 풍랑을 만납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고 해서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그 풍랑에 우리가 빠지거나 죽지는 않습니다. 자연을 만드셨고 주장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을 믿기 때문에 호들갑 떨지 않는 것이죠. 치우치지 않습니다.

 3) 귀신을 지배하시는 분
 이제  주님께서 거라사인 지방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대화중에 주님이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 때 귀신들린 사람이 말합니다. 군대입니다. 군대. 헬라어로 레기온이라는 단어인데 당시 로마의 1개 군단 병력이 6천명이었습니다. 즉, 그 귀신들린 사람에게 많은 귀신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귀신이란 천사가 타락한 존재를 말합니다.  귀신의 우두머리는 사탄 또는 마귀라고 합니다.  사탄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였지만 자신의 위치를 알지못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탄의 밑에 많은 귀신들이 있습니다.

 귀신의 특징은 오늘 말씀에 보면
귀신은 더러운 영입니다. 2절, 8절 더러운 귀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귀신은 힘이 있습니다. 쇠사슬로도 그를 묶어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가진 그 초자연적인 힘은 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힘을 가진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신은 사람을 방황하게 합니다. 본문에도 집을 떠나 정처없이 무덤에서 방황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귀신은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5절에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귀신들이 하는 짓은 항상 사람에게 상처와 죽음을 가져다 주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격의 중심부를 심하게 파괴시키고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귀신의 생각과 사상을 말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 돼지떼 2000마리가 비참한 운명을 갖게 되는 것도 그들이 꾸미는 흉악한 음모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파괴시키고, 포로자가 되게하고 그 사람에게 귀신의 생각과 사상을 말하게 하는 그들 당분간은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마귀 옛날 마을에 가면 꼭 이런 귀신들린 사람들이 한 명씩은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보면 그래서 두려워 합니다.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죠.

그런데, 오늘날은 귀신들이 방법을 많이 바꿨습니다.
사람들을 파괴시키는 것은 같지만, 하나님 없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첫째 자신들의 존재가 두려운 존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어찌하여 나를 두려워 하니.. 라고 속삭여 옵니다.
둘째 나아가 마귀가 없다고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게 하는 방법을 씁니다.
셋째 쾌락이라는 도구를 아주 잘 사용합니다. 
넷째 그리고 네 번째가 중요한데 우리들이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게 합니다.
  오늘날 어떤 것을 보아도 참이냐 거짓이냐 먼저 따지기 보다 학문적이냐, 실용적이냐, 케케묵은 것이냐 새로운 것이냐 인습적인 것이냐 과감한 것이냐를 따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교회안에서도 먹혀들고 있습니다. 성경적인가, 하나님의 뜻인가를 따지기 보다 교회상황에 맞는지, 이치에 맞는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에 따라 좌우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것들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사회에서는 중독을 통해서 인터넷중독, 스마트 폰 중독, 술중독, 사람중독, 일중독등 사람을 끌고 가고, 결국은 새로운 범죄, 엽기적인 일들을 통해 사람을 성공적으로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도록 사회를 황폐케 합니다. 아동성범죄, 묻지마 살인, 보이스 피싱 같은 뉴스에 계속 시사가 되는 범죄들의 특징은 사람을 믿어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이제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가까운 이웃도.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마귀의 특징들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귀신의 특징이 있습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귀신은 예수님을 두려워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거라사인 지방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6절 -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주님의 진정한 신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에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예수님의 등장 자체가 이 귀신을 두렵고 떨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자가 없는 곳에 늑대가 왕노릇 하지요. 하지만, 사자가 나타나면 숨습니다.
 얼마전에 아이를 보여주려고 예전에 봤던 라이온 킹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잠깐 보았는데. . 밀림의 왕 사자가 없는 곳에 하이에나가 왕노릇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사악하게 잠깐 왕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밀림의 왕 사자가 등장하자 쥐구멍이라도 찾아 사라집니다. 꼭 사악하고 못된 마귀가 사람을 헤치고, 상처를 주고 괴롭게 하다가 우리 주님이 오시자 굴복하고 꼬리내리는 유치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은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나름대로 다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세계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분의 선하신 뜻을 따라 다스리신다는 것. 하나님도 이런 세계관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마귀는 귀신은 절대 이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악한 영들은 세상의 사상과 정치와 문화 속에서 계속 속이고 역사합니다. 이럴때 일수록 악한 영의 머리를 밟으시는 예수님을 우리 삶에 등장시켜야 합니다. 우리 삶에 주님이 등장하시지 않으면 사악한 마귀의 손아래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2 두려움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특징 한가지는 두려움입니다. 두 사건 모두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광풍. 큰 바람 자연앞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보게 되고, 또 한 사건에서는 귀신들린 사람에게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1) 먼저 제자들 38절 - 예수께서는 고물에게 배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지금 제자들은 광풍에 떨고 있습니다. 자연에 의해 배가 뒤집힐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두려움 다음입니다.
 제자들의 자연앞에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고 그것이 멈추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41절 -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그들의 자연앞에 두려움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큰 두려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2) 또 한 사건은 귀신들린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5장 3절 -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멜 수 없게 되었으니 4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귀신들린 이 사람을 동네사람 누구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귀신들린 그에게 다가갈 자가 없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두려움도 바뀝니다. 또 다른 두려움으로..
 5장 14절 -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와서 15절 -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떠나 보내시고 돼지떼가 몰살 당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사건을 통해 믿지 않는 그들에게 믿음이 생겨야 하는데 하나님의 권능때문에 두려워 하게 됩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자연앞에, 귀신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신적 권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또 다른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다와 광품을 잠잠케 하신 하나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군대 귀신의 횡포를 잠잠케 하신 하나님

 여러분, 세상에서 두려워 할 존재가 누구입니까? 이 말은 더 큰 능력자가 누구냐라는 물음입니다. 자연앞에 떠십니까? 영적인 권세에 눌려 계십니까? 더 위대하신 분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자연과 모든 영적 권세 위에 계시는 분. 정말 그 모든 것을 지으신분, 그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분 그들은 더 큰 두려움의 존재를 보았습니다. 주님의 신적인 권세. 그러므로 다른 두려움들은 사라집니다. 더 큰 것을 보면 이전것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어려움과 삶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죠. 그런데 여러분! 어려움을 벗어나는 방법은 피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을 덮어버리는 은혜가 임하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더 큰 은혜가 덮을 때 그 밑에 있는 것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바꾸어서 예를 들면, 몇 달전에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이를 봤습니다. 혼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부모가 24시간 아이를 돌봅니다. 기도가 막히지 않게 가래를 빼주고, 산소 공급을 체크하는 부모, 낮에는 엄마가 외출도 못하고, 태어난 둘째 아이를 거의 안아주지도 못하고 방치해면서, 아픈 아이에게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엄마가 자는 4시간 동안 아빠가 새벽에 이일을 대신 해줍니다. 너무 가슴아픈 가정이고,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이 어려움을 보니까 우리 예현이를 볼 때면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아이가 해주는게 뭐 있겠습니까. 안아픈게 감사하고, 잘먹는게 감사하고. 그 가정과 비교할 때 나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알게되므로 감사하게 되는 것. 더 큰 은혜 깨닫다 보니 내 안에 작은 문제는 덮이는 것입니다.
 나의 형편과 상황에 답답해하는 분들은 빵 한조각 물한모금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동안 몰랐던 은혜와 감사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불평하는 아이들이 선교여행, 봉사모임에 다녀오면, 달라지는 경우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니, 명품가방이 시시해 보입니다.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의 사랑에 푹 빠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목숨걸고, 힘들어 하는 것들은 더 큰 능력, 더 위대하신 분을 바라볼 때 사라집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압도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한 영혼을 바라보시는 주님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한 사람에게 주목하시는 주님을 또 보게 됩니다.
5장에 등장하는 데가볼리는 10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찾아가신 거라사인 이라는 마을은 10개의 도시 안에 속한 마을입니다. 주님이 방문하신 이 거라사인 지방은 유대인들이 살지 않던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2000마리의 돼지떼가 있는 것을 보면, 돼지를 기르는 마을입니다. 이 지역은 로마제국이 많은 전쟁을 통해 약탈을 일삼았던 곳으로 보입니다. 이방지역, 헬라지역입니다.
 
 
 주님께서 이 지역 이 이방지역에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하실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 가셔서 한 일은 거라사인 귀신들린 사람 귀신 쫓아 주신 것입니다. 이 딱 한가지 일을 위해서 한 영혼을 만나시려고 그곳에 가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었고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는 피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5: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주님은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을 위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는 한 사람이 귀한 것입니다. 그 영혼을 위해서 어떤 댓가라도 감당하시는 주님
 십자가의 사건을 어떤 사람은 우리 모든 죄를 위해 지신 십자가라고 말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의 죄를 위해 지신 십자가가 맞잖아요. 우리죄가 아니라 나의 죄입니다. 주님은 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만큼 내가 주님께는 중요합니다. 나를 귀중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뿐만아니라 귀신 들려서 온전해진 이 사람이 이제는 주님을 따르려 합니다. 그련데 주님은 그의 제자됨을  거절하십니다. 왜 거절하셨을까요? 이 한 사람을 통해 데가볼리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길 바라셨습니다.
20절 -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이 사람은 거라사인 마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라사인을 뛰어넘어 데가볼리 전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마치 그 땅의 선교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죠.
 여러분!  주님 따라가겠다고 해도 주님은 모두다 따라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저 헌신할께요. 저를 이 일에 사용해주세요. 말해도 거절하시기도 하십니다. 각자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다르기 때문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따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주님은 내가 처한 곳에서 사용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일들을 행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결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의 질문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자신들의 문제들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신앙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예수님 믿으면 어떤 복을 받는가?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건강의 비결은 무엇일까?  공부 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러나 믿음이 자라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 확신이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분은 누구일까? 바람과 파도도 복종하시는 저분은 귀신이 굴복하는 저분 ? 저 분은 바람과 파도, 귀신을 지으신 분이구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는 자신들의 질문에 해답을 찾으려고 따라다녔습니다. 정치적인 이유였지요.  그러나 믿은 후에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은 누구신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광풍속에서 그들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간 것 처럼, 계속  우리의 삶도 질문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과 새로운 답을 정말로 계속 찾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바다의 풍랑 말고도 귀신을 제압하는 것 말고도 예수님이 제압하셔야 할 풍랑은 많습니다. 올바른 답을 찾고 믿으시면 그 풍랑도 거뜬히 넘어 가십니다.
 
모든일에 감사 (전철민 목사) 
복음의 씨를 뿌립시다 (전철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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