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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1)   11-04-13
jcmm   4,264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1)
서론 / 요8:32

‘율법과 죄와 은혜’는 성경의 핵심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작년 예배 전 성경공부 때 짧게 짧게 하기는 했지만 충분하게 설명을 하지 못해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하려면 약 30 강좌 분량이지만 줄여서 8 강좌로 요약을 하려고 합니다.
이 강좌를 하게 되는 큰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면 편협적인 지식만을 갖게 됩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마찬가지로 다리를 만지면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말하게 되고, 배를 만지면 코끼리는 벽 같다고 말하게 되고, 코를 만지면 큰 파이프 같다고 말하게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코끼리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도 전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진리에 대해 심각한 왜곡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파가 이렇게 많이 생긴 것입니다.
이번 주제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균형 잡힌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역사와 통치와 내 인생에 대한 바르고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될 것입니다.
결국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고 평안케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둘째는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의 접근을 위해서입니다.
바른 신학에서 바른 신앙이 나옵니다.
신학이 머리라고 한다면 신앙은 몸과 같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평신도들은 원천적으로 신학에 접근하는 것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 병폐는 중세시대로 거슬려 올라갑니다.
중세 초기에는 교회에서 대학을 세우고 성경을 가르치고 연구하게 하고 일반 학문을 가르쳐 지적 수준이 높았는데 평신도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져가자 교회 지도자들이 평신도를 통제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대학들을 폐쇄하고, 일반 평신도들이 성경에 접근하는 것을 금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평신도들은 신학과 신앙에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무지하게 되자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다루기가 쉬어졌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얼마든지 속이고 착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 면죄부를 판매하여 막대한 헌금을 거두었습니다.
비록 부모가 지옥에 있을지라도 면죄부를 사게 되면 연옥으로 올라오게 되고, 다시 헌금을 하게 되면 연옥에 있는 부모가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교리였습니다.
힌두교인들은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 목욕을 하면 죄가 씻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태워 그 강에 뿌리면 좋은 곳에 간다고 믿습니다.
면죄부 사는 천주교인들이나 갠지스 강을 신성을 믿는 힌두교인이나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의 성도들 역시 중세교회나 힌두교에 속듯이 속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어느 날 가장 큰 대형교회를 이룬 한 목사님을 초청해서 그 비결을 배우기 위해 한 호텔에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간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교회를 하고 있는 그 목사님은 어느 날 심리학책을 보다가 심리학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처럼 담대하게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이번에 하는 사업은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내년에 시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 자녀는 이번에 대학에 합격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 병은 나을 병입니다”
확률은 50%입니다.
만일 그 선포대로 되면 당사자는 그 목사님을 신처럼 떠받들게 되고 교회에 온갖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때 한 목사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그 선포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큰 교회 목사님은, “당신은 그렇게 목회하니까 교회가 크지 않지요 만일 선포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성도는 하나님의 종이 선포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내가 기도를 게을리 했거나, 헌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거나, 봉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입니다”
즉 선포대로 이루어진 사람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이고 안 이루어진 사람은 그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고 응답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자연히 교회는 부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함정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병든 교회입니다.

거짓 지도자들은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예수 믿으면 병 고침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단편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입니다.
그런 가르침은 성경의 본질을 왜곡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상업적 기독교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진리에 결코 이를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다 둘 다 소경입니다.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마5:14)
한국교회가 지금 이런 모습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금번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 강좌는 우리교회에서 평신도들이 꼭 알아야 할 기본적 신학강좌를 개설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통속적인 잘못된 개념 정리를 위해서입니다.
‘율법과 죄와 은혜’는 가장 핵심적인 진리면서도 또한 가장 잘못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 들을 때마다 기독교가 도덕 종교, 규범 종교라는 생각 때문에 신앙생활 자체가 법에 의해 억압을 당하는 느낌 그리고 법을 어김으로 인해 받아야 할 형벌이 생각되어 마음이 어둡게 되기가 쉽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구원을 얻으려고 열심히 법대로 살려다가 실패하고 좌절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율법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게 되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때문에 큰 감동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지만 여전히 율법을 범하고 죄를 짓는 인간의 속성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과 죄책감이 교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심해집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 보려고 노력하는 신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은혜’ 역시 뭔가 은혜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열심 있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빠끔 열고 조금 쏟아 부어 주는 정도의 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잘 바치고, 교회 봉사도 이것저것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사서 그 은혜를 받아 보려고 애를 쓰는 가련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은 거의 가 ‘율법과 죄와 은혜’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은혜는 새롭게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를 깨닫고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신 이유는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성도들에게 사용하여 강제적으로 은혜를 주입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 하여금 서서히 깨닫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일상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면, 택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되면 그 은혜에 감동하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그 감동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그 감동이 헌금을 하게 합니다.
그 감동이 봉사를 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성도가 머물고 있는 자리는 감동이 묻어나옵니다.

저는 요즘 제 6회 봄맞이 음악회 때문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두란노 아카데미 후원을 위한 음악회입니다.
델리 성가대원들이 구르가온까지 주일날 내려와서 음악회 준비를 하고, 구르가온 성가대원들이 토요일 또 델리까지 올라와 음악회 준비를 하고....
지난 주일날은 연습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저분들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할까?
담임목사가 위협을 한 것도 아닌데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그것이 감동입니다.
음악회에 도네이션한 기업들과 개인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음악회에 교민들이 와서 감동을 받고, 외국 사람들이 와서 감동을 받고, 음악회 감동으로 두란노 아카데미 학생들을 공부시켜 좋고....
음악회도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니까 하는 것입니다.
인도 어느 한인교회나 천주교회나 다른 기관에서 흉내도 못 낼 정도로 수준 있고, 감동 있는 음악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교회를 통해 하게 하시니까 그것이 또 감동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이 머물고 간 자리에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출렁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나 이제까지 교회를 다니면서 ‘율법과 죄와 은혜’의 관계를 들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신학공부 7년 하는 동안에 이런 핵심적 진리에 대해 강의를 들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도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연구도 하고 책을 읽었지만 시원하게 정리가 된 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성경적이라고 하는 장로교 칼빈의 신학조차도 악이나 죄의 근원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집을 잘 지어 놓고 창문을 달았는데 유리창을 끼어 넣지 못한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
유리창 없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먼지가 들어오고 비가 들어오고 그래서 집이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은 저 뿐 아니라 아마 여러분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세계적인 신학자들 역시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해 왔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이 속시원하게 알고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믿는다”
그럴듯한 말 같지만 이처럼 무책임하고 도피적인 말이 또 없다고 봅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이해하고 믿어집니까?
 
주변에 이런 진리 문제로 고민을 하는 목회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사는 어떻게 교회를 부흥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교인들을 관리해야 되는지?
어떻게 땅을 사서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가 거의 모든 관심사이지 진리문제를 가지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목회자를 만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고민을 불쌍히 여기시고 어느 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몇 년 전에 이사를 하다가 우연히 서재를 정리하는 중에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책 겉표지 색깔이 바랜 아주 오래된 책이었습니다.
인도에 와서 이사를 열 번 이상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책을 다 정리해서 버렸는데 어떻게 색깔이 바랠 정도로 오래된 책이 서제에 있었는지 그 책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들었는데 책 제목이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라는 책이었습니다.
저자 이름을 보았는데 처음 보는 이름입니다.
박용기 목사.
신학박사도 아니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어떻게 해서 그 책을 가지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데 그 당시에는 그런 신학적인 고민을 할 만큼 수준이 안 돼 있었기 때문에 아마 대강 읽다가 나중에 읽으려고 서재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책을 버리려고 했다가 제목이 맘에 들어 장갑을 낀 채로 그 책을 잠시 훑어보았습니다.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삿짐 싸는 것을 중단하고 장갑을 벗고 그 자리에서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딱딱한 책인데 워낙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단순에 다 읽었습니다.
그날은 창문에 유리창을 낀 날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던 ‘율법과 죄와 은혜’와의 상관관계를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깨끗하게 정리하여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문제를 취급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정통해야만 가능합니다.
오랜 연구를 통해서만이 도출해 낼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인생 가운데 가장 축복된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 만남은 진리 때문에 이루어진 만남이기 때문에 만나는 순간부터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목사님에게서 배운 제자 가운데 세계적인 신학자도 나왔습니다.
지난 30여년간 오직 성경만을 연구하신 분입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성경연구가 아니라 석박사급 연구위원들과 함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성경연구에 메달리신 분입니다.
얼마 전에 박용기 목사님이 설립한 ‘성경신학연구소’가 정부로부터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습니다.
종교계의 재단법인은 각 교단 총회를 말합니다.
장로회교단이나 침례교단이나 성결교단같은 천개, 이천 개, 오천 개 교회가 합쳐졌을 때 재단법인 허가를 내 줍니다.
불교계도 조계종이라든지 그런 종단이 재단법인입니다.
‘성경신학연구소’는 박용기 목사님 개교회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 재단법인 허가를 받은 것은 특별한 케이스로 그만큼 학문적, 신학적인 업적을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신앙, 건전한 신학은 열매가 증명을 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심각할 정도로 부패해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신앙이 많이 타락해 있습니다.
언론의 밥이 되었습니다.
MBC, KBS 같은 진보 공영방송들은 대형교회들의 비리를 파헤쳐 방송하기를 일삼고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의 공공의 적같이 행동합니다.
그들은 없는 것을 지어내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방송을 합니다.
조선일보 같은 보수적 언론이나 한계례같은 진보적 언론 심지어 기독교 언론조차도 이런 치부들을 보도하기 때문에 수십만 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천주교가 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MBC에서 한국에 세 교회를 선정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는 이런 교회도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 자신들의 언론 플레이가 정당한 것임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그 세 교회가 이동휘 목사님이 담임하셨던 전주 안디옥 교회, 김동호 목사님이 목회한 높은 뜻 숭의교회, 그리고 박용기 목사님의 목회한 장안중앙교회입니다.
바른 진리라면, 바른 신앙이라면, 바른 신학이라면 거기에 따른 열매가 삶의 열매가 있게 마련입니다.

만남이라는 것은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과 신학과 신앙적인 교류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진리를 사모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만남도 이런 축복된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에 시리즈로 설교하게 될 ‘율법과 죄와 은혜’ 강해는 물론 박용기 목사님의 책을 기반으로 해서 하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그 책을 통해 저의 집 창문에 유리창을 끼웠듯이 여러분들도 이번의 연속 설교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여러분들의 창문에도 유리창을 끼워 집안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가지고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어떤 분들에게는 강의 내용 가운데 생소하게 와 닿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 강좌가 근본문제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이 주제에 대해 성경 전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면서 근본에 접근한 신학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 한국교회 최대 교단들로부터 이단성이 있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합동이나 통합이나 고신 장로교단 총회에서 위원회를 구성하여 박 목사님의 책들을 검토하고 신학 사상을 조사한 적도 있었지만 어느 연구 하나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 없고 오히려 성경 사상을 더 고조시켜주는 연구임을 알고 각각의 총회에서 이단성이 없다고 공표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느낌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이 연구 결과를 수용해도 됩니다.
그리고 모든 강좌는 우리 교회 홈 페이지 설교에 다 올라갑니다.

I. 죄

죄 문제는 신앙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이 없으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게 됩니다.
마치 새싹이 돋아나려는데 큰 돌이 위에 가로 막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돌을 치워 버려야만 싹은 힘차게 자랄 수가 있습니다.
확신은 신앙생활에 큰 용기와 힘을 줍니다.
이 주제에 대해 강의를 다 듣게 되면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가복음 2장 17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말로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느 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만일 용서하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사랑이 없는 선지자라 할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몸을 굽혀 땅 위에 글을 쓰셨습니다.
무슨 글을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글을 쓰시고 난 후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이 여인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로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다 돌을 놓고 집으로 갔습니다.
주께서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같은 죄를 범치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복음입니다.
주님은 죄문제를 해결하기 오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오면 죄문제가 해결이 돼야 합니다.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오히려 성도들을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꽁꽁 묶어 놓습니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것 해라 이것 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하면 복 받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자유와 평안을 얻으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인데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 용서 받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죄가 이미 용서되었음을 알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이 되면 신앙은 쑥쑥 자라게 됩니다.
이번 강좌의 첫 번째 주제가 될 것입니다.

II. 율법

율법 문제는 기독교인의 윤리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구원을 받았으면 기독교인의 생활 윤리로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아마 여러분들로 이렇게 배웠을 것입니다.
강남에 있는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이 ‘구원 그 이후’라는 책을 냈는데 그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장로교도 그렇게 가르치고 침례교도 그렇게 가르치고 성결교, 다른 모든 교파들이 다 그렇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율법을 기독교인의 생활윤리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성경과 모순된 가르침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거나 구원을 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8절에,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도,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생활 윤리로 지키려고 할 때 율법대로 살면 본능이 억압당하게 되고 본능대로 살면 규범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좌절감, 그리고 죄책감이 가중이 됩니다.
이 갈등을 오늘의 기독교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윤리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결국 인본주의 기독교에 자유주의 기독교에 신비주의 기독교에 다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버젓이 교회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강의 중에 교회역사를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생활윤리는 율법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님이 성도 속에 내주하심으로 인해 사랑과 감사와 감동으로 행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 윤리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율법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은 지킬 수 없는 것이기에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이단적 발상입니다.
율법이 지금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용도를 알 때 율법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III.은혜

은혜는 평안한 가운데 감사생활을 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은혜를 받으려면 뭔가 열심히 해야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 준다는 잘못된 생각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압니다.
하지만 병이 들어 죽을지 살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밥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건강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고 병도 주십니다.
축복을 받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실패하게 하시기도 하시고 돈을 잃게 하기도 하십니다.
당연한 것들이 큰 은혜입니다.
해를 인해 감사, 달을 인해 감사, 먹는 것 때문에 감사, 입는 것 때문에 감사...
은혜 중의 은혜는 하나님을 아는 은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
폭포수 같은 은혜를 지금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평안한 가운데 감사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임마누엘 성도 여러분!
이번 강좌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 시리즈 설교를 통해 진리로 자유를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역공과 나눔>

1. 율법과 죄와 은혜라는 단어에 대한 통속적인 잘못된 개념으로 인해
  받은 상처들에 대해 나누어 보고 성경에 기초한 바른 이해를 가져
  봅시다.

2. 죄는 우리 신앙에 어떤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율법은 우리 신앙에 어떤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은혜는 우리 신앙에 어떤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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