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LOGIN

MEMBER LOGIN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서자   13-01-15
jcmm   3,989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서자 / 딤후3:14~17
 
 


올해의 표제는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서자“(딤후3:14)입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서자”
 
세 가지 목표입니다.
 
하나는 성경을 배우자!
 
확신하자!
 
신앙이나 삶이 견고하게 서자!
 
다른 해 보다는 더 열심히 성경을 배우고, 확신 가운데 서서 세상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발하면서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 성경을 배우자
 
본문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라면 성경을 반드시 배워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15절)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단순히 영혼의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구원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16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도 한 것입니다.
 
이 지혜가 없으면 많이 배웠어도 무지하게 살게 되고, 돈이 많아도 실제로는 가난하게 살게 되고, 정서적으로 메마른 상태에서 살게 됩니다.
 
 

둘째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해 준다”고 했습니다(16절)
 
즉 최고의 인생 교사인 성경에서 배우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 황수관 박사님의 소천 소식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의 친 형님 못지 않게 저희 부부에게 잘 해 주신 분입니다.
 
건강 강연과 세브란스건강센타 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분인데 저희가 한국에 나가면 꼭 시간을 내서 잠실까지 만나러 오셨습니다.
 
극진히 식사를 대접해 주시고, 몸이 약해 보이면 약 지어 먹으라고 돈을 주시기도 하시고, 사모님도 별도로 시간을 내 산본 아파트에서 잠실까지

차를 타고 와서 저희 부부를 태워 여름에는 보신탕이 좋다고 안산 산 골짜기까지 가서 보신탕을 사 주기기도 했습니다.
 
두란노 아카데미 한 평 가기 운동하는 것을 아시고 무명으로 몇 백 만원을 헌금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너무 잘 해 주시니까 어느 해는 한국에 가도 미안해서 연락을 일부러 하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황 박사님은 인도에서 힘들텐데 웃으라고 가끔 단편 유머 글들을 보내 주시기도 했습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고 책도 내시고, 강연을 하러 다니셨는데 갑자기 패혈증으로 돌아 가셔서 참 안타까왔습니다.
 
 

안타깝지만 재미있고 보람 있게 사시다 간 축복의 인생입니다.
 
젊었을 때는 한도 끝도 없이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성공하셨고,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동생들에게도 극진하여 어려운 살림에도 공부를 다 시켰고, 살 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자신보다는 남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살다 가신 분입니다.
 
성공해도 결코 교만하지 않으셨고, 국회의원 떨어지고, 공천을 못 받아 속을 상하기도 하셨지만 항상 웃고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외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황 박사님을 보면서 성경이 이처럼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는 것을 절절이 실감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선한 일을 행할 능력”(17절)을 갖추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즉 죄인된 인간으로 태어나 감히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사역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했습니다.
 
 

만일 한국의 모든 크리스찬들이 성경을 제대로만 배웠다면 교회 안에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이런 탁월한 신앙인, 탁월한 인격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성도들이 가득할텐데 사실 그런 성도들은 가뭄에 콩 나듯이 찾아보기 드믑니다.
 
교회에는 교인들도 넘쳐 나지만 제대로 된 성도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목사인 제가 볼 때 성경을 설교하는 목사는 아주 드믑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는 더욱 드물고요.
 
성경본문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인데 본문을 읽고 거의 가 다 자기 생각과 주장을 이야기 하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선의적이던,

악의적이건 선동적인 설교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만일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쳤다면 분명 오늘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지금처럼 사회에 부담이 되거나 외면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더 이상 전도가 안 되잖아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잖아요.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자 몇 년 전 한국의 140여명의 신학자들이 모여 대책을 세우면서 결론을 지은 것이 있습니다.
 
각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자들이 모인 것입니다.
 
장로교 신학자, 성결교 신학자, 침례교 신학자, 순복음 신학자.......
 
그 분들이 내린 결론은, ‘성경으로 돌아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이 의미 자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대부분입니다.
 
 

성경을 설교하는 목사님이 거의 드물다는 의미는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가르칠 수 있는 목사님이 드물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 설교와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눈치가 빠른 분들은 몇 달만 들어보면 알게 되고,

눈치가 좀 느린 분들은 한 일년 정도 들어 보면 압니다.
 
제가 창세기를 설교하건, 다니엘서를 설교하건, 마태복음을 설교하건, 로마서를 설교하건 언제나 주제는 같습니다.
 
성경이 한 권의 책이고, 주제도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매주 마다 설교 본문이 바뀔 뿐 아니라 주제도 그때 그때마다 다릅니다.
 
교회 건축을 할 때는 구약성경에 성전 건축에 관계된 구절을 뽑아서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고,

건축을 위해 힘껏 헌금한 교인들은 축복을 받는다“고 설교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전건축은 그게 주제가 아니거든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임마누엘 비전센타를 지금 건축하고 있는데도 건축헌금 내라는 말을 아예 안하잖아요.
 
 

교인들이 말을 안 들으면 ‘주의 종에게 잘못하다가 벌을 받아 죽은 사건’을 뽑아 설교합니다.
 
그 사건은 그 주제가 전혀 아니거든요
 
교인들이 담임목사 말 잘 안 듣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제 자식들도 부모 말 안 듣는데 교인들이 자기 말 잘 들을거라고 생각하는 목사가 있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런 착각 때문에 스스로 시험에 빠집니다.
 
 

성도들은 담임목사 말을 들으러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들으러 다닙니다.
 
담임목사 하는 말이 성경적이고 교회에서 하는 행사나 선교사역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지면 참여하는 것이고,

그것이 안 믿어지는 교인들은 안 하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교회생활 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불순종하다 벌 받은 사건은 오늘날 담임목사 말 잘 안 들으면 벌 받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수 십년 목회 경험상 제 말 안 듣고, 제 속을 썩인 사람들 아직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이슈가 있거나,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성경에서 그런 유사한 사건을 뽑아서 설교하기 때문에 그때 그때마다 주제가 달라 집니다.
 
그런 설교를 십 년을 들어도 이 십년을 들어도 정리가 안 되니까 되는데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하나의 책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기 때문에 강해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성경을 강해 하더라도 전체 성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강해하면서 요한계시록과 연결시킬 수 있고, 마태복음을 설교하면서 다니엘서와 연결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한 권의 책이고, 주제도 하나이기 때문에 늘 일관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모든 성경이 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한 권의 책입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도,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성경이 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기록된 한 권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을 못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가 장차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에 맞추어 진행이 되었고, 신약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대속하여 불러내신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즉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백성들을 영원한 천국에 부르시기 위해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창세 전부터 그렇게 하시겠다고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은 성도들은 그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스스로 찾고 확인시키기 위해 수요성경공부를 토론식으로 하고 있는데 부담이 돼서 안 나오는 성도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어른 세대는 주입식으로 공부를 해서 토론에나 프로젝트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성경을 깨닫고 탁월한 신앙인, 탁월한 인격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앞으로

수요성경공부는 그냥 강해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부담이 돼서 안 나온 분들도 다 나오세요.
 
구역장님들 책임을 지고 구역원들에게 성경을 공부시켜 탁월한 구역원들도 만드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배워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되고, 최고의 교사인 성경에서 배우기 때문에 온전한 사람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됩니다.
 
 

II. 확신하자
 
본문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확신하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현실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실제하는 능력입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설교를 했습니다만 하박국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조국,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은 조국, 여기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충격으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듯한 통증으로 몸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의 현실과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 실제적인 믿음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스토리입니다.
 
세상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확신있는 믿음이란 이처럼 현실과 주변의 상황과 관계없이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연초부터 신문에 세상에서 실패하고 죽어가는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직장문제, 사업문제, 가정문제로 혹은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들어 좌절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직장에서 40대 후반에 퇴직을 당하고, 이혼한 뒤 부인이 두 딸을 데리고 나가고 혼자 살던 한 남성이 택시 기사를 하면서 근근이 살다가 암에 걸리게 되고,

치료할 엄두가 안 나니까 아예 자포 자기 상태에서 매일 막걸리를 두 병씩 마시고, 담배를 두 갑씩 피우다고 혼자 쓸쓸이 죽었는데 15일만에 발견이 되었다든지,

젊은 청년 하나가 취직도 안 되고, 세상 살기가 힘들어 한강에 뛰어 들어 죽었다든지......
 
만일 그 사람들이 이 믿음을 알았다면 하박국처럼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 믿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고 했습니다.
 


이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확신을 갖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 속에서 어떤 근거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나는 매주 교회를 잘 다니고 있다!
 
나는 매일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다!
 
나는 십일조를 잘 내고 있다!
 
나는 교회에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참여하고 봉사한다!
 
이 정도 되면 훌륭한 성도임에 틀림이 없는데 확신이 희미합니다.
 
내 속에서 확신을 찾으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더욱 불확실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속에 어떤 선한 것이 없습니다.
 
예레미아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서 무슨 확신의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확신은 우리가 믿는 대상에서 찾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하나님이 나의 주 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왕 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분에게 내 인생 전체를 다 맡겨 통치하시도록 위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하나님은 주권적이시며,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진심으로 의뢰하는 줄 아시고,

어떤 형편에 있든지 총체적인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폭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은 상 주십니다.
 
즉 만나주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아 29장 13절에,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만남의 체험은 각각 다 다릅니다.
 
 

예수님이 믿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하는 영의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순종하고픈 마음이 생깁니다.
 
기쁨과 평안이 속에서부터 흘러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깨달아지니까 감사와 감동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시험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소망을 갖게 됩니다.
 
때로 신비한 영적 체험이 따라 오기도 합니다.
 
이런 영적인 특성들로 인해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III. 서자
 
본문에 다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결과 이제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확신을 갖지 않으면 마치 ‘모레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떠 내려 가고 흔적도 없어집니다.
 
인생에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믿음이 실종이 돼서 세상 사람과 구별이 안 되게 삽니다.
 
하지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서면 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어떤 시험과 환난이 와도 꺼떡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성도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며
 
하나님을 경외하면 사는 장성한 성도가 됩니다.
 
 

사랑하는 임마누엘 성도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서는 새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병이어 (전철민 목사) 
우리가 믿는 신앙 (전철민 목사)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수집거부  |  사이트맵  |  온라인문의
Add : 구글지도에서 'church of immaculate conception '을 입력하시면 찾아오실수 있습니다
Add : church of immaculate conception in sec 45
Tel : 조영태 목사 9899576 389) E-mail : seesatman@naver.com/
Copyrignt www.gurgaon.or.kr Reserved. made by woo020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