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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강해(18)/예수 사역의 우월성(3)/성막 사역의 우월성   11-10-17
jcmm   4,076
 
히브리서강해(18)
예수 사역의 우월성(3)
성막 사역의 우월성 / 8:1~9:10

요즘 건망증 때문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이 명희 성도와 비하르 파트나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만 평 대지를 기증해 주신 분과 MOU를 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교회 법인이 세 개가 있는데 그 중 교육 법인의 대표가 이 명희 성도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델리 공항에서 검색대에 핸드폰과 겔럭시 탭을 한 바구니에 넣고 몸 검사를 받은 후 바구니에서 탭만 꺼내고 핸드폰을 놓고 왔습니다.
기내에 들어 와서 핸드폰이 없는 것을 알고 승무원에게 검색대로 연락을 취해 달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검색대 직원이 기내 안까지 핸드폰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파트나 공항에 내려 공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손가방을 놓고 나가는데 이 명희 성도가 가방을 챙겨 주었습니다.

다음 날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갔는데 방에 식사 쿠폰을 놓고 왔습니다.

오후에 델리에 오기 위해 파트나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할 때 ‘이번에 절대로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잔뜩 신경을 쓰면서 검색대를 통과한 후 핸드폰은 주머니에 탭은 가방에 넣고 유유히 휴게실에서 앉아 있었는데 뭔가 허전했습니다.
이번에는 핸디 케리어를 검색대에 두고 온 것입니다.
요즘 나도 나를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지난 주 구르가온 교회 성경공부를 인도하러 가는데 구역공과 나눔 질문 내용을 깜빡 하고 왔습니다.
교회 홈 페이지 설교란 마지막 하단에 질문 내용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인터넷에 들어가 홈 페이지 열고 질문 내용 확인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핸드폰을 분실한 후 새로 하나 샀는데 스마트 폰은 아니지만 요즘 웬만한 핸드폰은 인터넷이 다 됩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래 된 수동식 핸드폰을 썼습니다.
전화 거는 것과 받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을 사용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새로 산 모바일 덕분에 구역공과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메일도 받고 보낼 수도 있고요.
신문도 볼 수 있고, 성경과 찬송가도 저장해 놓았습니다.
건망증이 심해지는데 일정을 잊지 않고 알려 주는 기능까지 있습니다.
날씨와 위치 정보 그리고 네비까지 다 됩니다.
사전을 비롯해서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을 다운로드할 수도 있습니다.
은행업무도 핸드폰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핸드폰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들이 많이 있는 스마트 폰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옛날 수동식 핸드폰을 고집하면서 불편하게 살았던 것을 생각하며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한 25년 전이었던가요?
차에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무전기같이 큰 핸드폰을 차 안에서 쓰는 것은 당시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핸드폰은 역사박물관에 가야 구경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스마트폰과 같은 복음의 시대를 열었는데 아직도 안테나 세우고 무전기를 들고 통화하려는 구약시대 율법에 메여 살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히브리서 기자는 옛 것과 새 것을 비교해 주면서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강해 구조는 옛 것과 새 것의 비교방식입니다.
1장에서 6장까지는 ‘예수 신분의 우월성’에 대해 말씀합니다.
천사보다 우월하신 예수, 모세보다 우월하신 예수, 아론보다 우월하신 예수를 말씀합니다.
7장은 ‘예수 제사장 사역에 우월성’에 대해 오늘 8장에서는 ‘예수 성막 사역의 우월성’에 대해 그리고 9장에서는 ‘예수 제물 사역의 우월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7장 8장 9장은 구약시대의 불완전한 속죄사역과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사역의 명백한 차이점을 말해 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깨닫아야 구약시대 율법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신약시대 복음신앙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속죄 제사를 드리려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첫째가 속죄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셋째는 소나 양, 염소 같은 살아 있는 제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 제사가 불완전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제사가 완전했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자신이 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성막이 되시고, 친히 제물이 되어 드리는 십자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첫 언약이 흠이 있어서 새 언약을 세우셨다고 했고, 13절에서는 첫 언약은 낡아지고 쇠하는 것으로 없어져 간다고 한 것입니다.
9장 1절부터 10절까지도 이 땅에 있었던 장막과 제사제도는 하늘에 있는 것들에 대한 모형과 비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속죄제사에 필요했던 제사장, 성막, 제물은 신약시대에 오실 참된 제사장이며 참된 성막이며 참된 제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모형이라고 5절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구약에 이런 불완전한 속죄제사에 비해 신약시대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속죄제사가 얼마나 완전한 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구약시대에 사로 잡혀 있는 성도들은 속죄사역을 이루는 제사장, 성막, 제물에 대해 구약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아닙니다.
목사에게 마치 구약시대처럼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다고 가르친다든지, 교인들에게 예언 기도를 해 주는 목사가 있다면 그것은 사기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0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중세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들만이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신의 대리자라고 가르칠 때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다 평등하다는 것을 주장한 선각자들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입니다.

또한 자기가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중재하는 중보자라고 가르치는 교황이나 주교나 신부들 역시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중보자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속이는 자가 속는 자나 다 구약시대에 갇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신약시대는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는 성전이 아니라 교회당입니다.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하고, 교제를 나누는 곳입니다.
교회당에서 모이면 어떻고, 학교 강당에서 모이면 어떻고, 극장에서 모이면 어떻습니까?
수백억씩 들여 화려한 성전을 짓고 있는 많은 대형교회들은 보이는 건물에 집중하는 구약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의 성전입니다.
우리 성도들 자신이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건물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참된 성전이신 주님께 집중을 해야 하며 성전인 성도에게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해서 성전을 세우고, 말씀으로 우리 속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에 집중을 하면 중세 교회처럼 다 망하게 됩니다.

죄의식과 죄책감에 사로 잡혀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죄가 생각이 날 때 마다 회개하고, 고백하고, 아파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제사를 반복해서 드리는 구약시대에 사로 잡혀 있는 성도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병적 고리를 끊고 신약의 복음시대로 들어가게 하려고 옛 것과 새 것을 비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속죄방식 역시 구약시대와 똑 같습니다.
제사장, 성막,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신약시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제사장되시고, 친히 성막이 되시고, 친히 제물이 되신 제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자신의 제사장 사역에 대해 지난주에 7장에서 잘 설명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8장에서는 속죄제사의 두 번째 필수적인 요소인 ‘성막’ ‘성전’ 사역에 우월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I. 하늘의 성막(1~3)
본문 1절에,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원래 모습입니다.
원래 이렇게 계시다가 잠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시고 다시 원래 있는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
원래부터 대제사장으로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우리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리들도 원래 영원 전부터 하늘에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계셨듯이 우리도 그 안에 씨로서 창세전에 함께 있었습니다.
씨로 있을 때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를 알 수도 없고, 아빠를 알 수도 없고  세상을 알 수도 없습니다.
태어나야 보면서 살면서 겪으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씨로서 존재하던 우리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태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알도록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시면 우리를 어떤 식으로 인도하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일 주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무려 40년 동안 광야로 이끌어내서 하나님을 배우게 만듭니다.
순종하기도 하고, 불순종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매를 맞고 고통 가운데 있게 하기도 하시면서 하나님을 배우게 하십니다.
배운 다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우리들 역시 이 땅에 내려 보내셔서 죄악 가운데 태어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창세전부터 이미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간구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 제사를 드리시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인도 살다가 부모와 일가친척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좋잖아요.
안 좋습니까?
물론 한국 가기 싫어서 계속 연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하고 천 년 만 년 이 땅에 살려고 이 땅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II.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4~6)
본문 6절에,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그들의 중보자는 모세였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려고 할 때마다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를 통해서도 구약 시대 백성들이 죽을죄에서 멸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듯이 하늘의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에 속죄사역은 완전한 것입니다.
흔들릴 수 없는 구원이 바로 성도들의 의이며 능력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삽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III. 새 언약을 세우심(7~12)
본문 8절의 말씀은 예레미아 31장 31절의 인용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께서’란 원문은 ‘여호와께서’란 말입니다.
‘날이 이른다’는 말은 ‘때가 되면’ ‘그리스도가 오시면’이란 뜻입니다.
10절에도 ‘그 날 후에’라는 말도 ‘그리스도 오신 후에’라는 말입니다.

지난 주 사경회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성경이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동일한 세 가지 언약을 하셨습니다.
자손, 땅, 통치의 언약입니다.
구약시대를 통해 이 세 가지 언약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 이름이 ‘여호와’이신 것이신 것은 그 이름대로 ‘연약하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루신 땅에서 이루신 이 삼대 언약은 신약시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실 영원한 삼대 언약의 모형인 것입니다.

자손 언약은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수하게 생길 것에 대한 성취입니다.
이사야 53장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 언약대로 인도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북한 땅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호주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전 세게 방방곳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영적인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땅에 대한 언약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니까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믿어지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성도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똑 같이 밥 먹고, 일하고, 아이들을 낳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성도와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불신자와 생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너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살 하늘의 나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많은 성도가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믿지만 장차 우리가 가서 살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믿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새 언약은 영적이며 영원한 언약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 계시듯이 우리 역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통치에 대한 언약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실 영원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6절에,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영원한 나라인 것입니다.

IV. 새 언약의 특징
1. 하나님 말씀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심
10절에, “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새 언약은 돌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심비에 새긴다고 했습니다.
심비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록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생각 속에 기록하겠다는 말입니다.
즉 깨달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깨닫게 되면 알아서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해라, 이 닦아라. 전쟁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알아서 합니다.
하루에 세수를 세 번 네 번 합니다.
이 닦으란 말 안 해도 알아서 닦습니다.
깨달으면 합니다.
알아서 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합니다.
자발적으로 즐거움으로 하게 됩니다.

2. 죄를 기억치 않게 됩니다.
12절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이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죄인 되게 만드는 것이 옛 언약입니다.
율법의 기능이 그렇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이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로 인해 죽게 만듭니다.
로마서 7장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이 필요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하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인생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탕자가 돼지우리 속에 들어가 보아야만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듯이 율법은 우리를 돼지우리 속에 가둡니다.
돼지우리 속에 들어간 탕자가 아버지를 생각했듯이 성령께서 택한 자녀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성막이 되시고, 친히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드려 주신 속죄사역을 깨닫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이 진리로 인도하셔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새 언약은 한 번 속죄 제사를 드려 맹세하신 언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억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이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히4:16)

사랑하는 임마누엘 성도 여러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속죄와 구원과 영원한 삶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알려 주기 위해 영적 새언약을 세우시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시고 계십니다.
언약하신대로 수많은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임하게 하여 땅에 살지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게 하셨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산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내 행위나 노력이나 공로나 율법을 통해 구원을 받으려는 구약시대를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속죄 사역 위에 평안과 확신을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역공과 나눔>

1. 속죄 제사에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인가?

2. 구약의 불완전한 속죄 제사와 신약시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 제사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자

3. 구약의 삼 대 언약의 성취는 신약시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실 영적
  삼 대 언약의 예표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영적 삼 대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가고 계시는지 이야기 해 보자
 
히브리서강해(19) 예수 사역의 우월성(4) 제물 사역의 우월성 
히브리서강해(17)/예수 사역의 우월성(2)/ 제사장 사역의 우월성(2)/ 7:20~28 / 예수 제사직의 완전한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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