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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11-12-25
구르가온   4,010
 
하늘의 영광, 땅에 평화 / 눅2:1~14

지난 한 주간 지구상에는 두 사람으로 인해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입니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자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 민족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나라들에서는 사태 파악과 향후 대책을 고심하며 발 빠르게들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때 세계 증시가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지금 한반도에는 비상경계 태세가 내려져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 천년전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매해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분위기로 전 세계가 들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힌두교 국가인 인도도 지금 호텔과 백화점과 레스토랑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성탄절 츄리가 장식되어 있고, 캐럴 송이 울려 퍼지고 산타 모자를 쓰고 손님들을 맞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이사 가는 Belmont 아파트 모든 동 현관에 성탄절 츄리와 장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여기 인도 맞아” 할 정도입니다.

지난 한 주간 이 두 인물이 세계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 시키고 있습니다.
이 두 인물의 삶은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자기 한 사람의 영화와 권력 유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착취와 인권 유린 그리고 굶주림과 공포와 절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의 등장과 통치로 인해 북한에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과 바다를 건너 자유와 먹을 곳이 있는 땅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는,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며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 자유와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세상을 요동케 하고 있는 이 두 인물들의 삶을 대조하면서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멸망의 길로 갈 수도 있고, 생명의 길로 갈수도 있다는 생각하면서 우리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를 했습니다.

2011년 올 한해는 이제껏 제가 겪어 왔던 어떤 해보다 사고와 재앙이 많았던 해였습니다.
특히 세계의 독재자들에게는 잔인한 한 해였습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지구상 여섯 명의 독재자들이 한 해 동안 다 몰락했습니다.
다섯 명의 독재자들이 시민혁명에 의해 몰락했고, 한 명 김정일은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는 23년간 독재에서 축출되었습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30년 독재 종지부를 찍고 쫓겨났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그바그보는 10년 독재에서 축출 당해 지금 네덜란드에 감금 당한 채 재판 을 받고 있습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42년 최장기 독재 중 지난 10월 시민군에게 사살되었습니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는 33년간 독재하다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은 지난 12월 17일에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아직 시리아의 알아사드가 남아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하며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데 그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의 장기 독재로 인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이 유린을 당하고, 공포 속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되고 절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어떤 해 보다도 대형 사고와 재앙들이 잇따랐습니다.
일본에 몰아닥친 쓰나미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실종이 되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원전누출로 인해 아직도 그 지역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9.11 테러의 주범 빈 라덴이 사살되었고, 월가의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대립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유럽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지금 흔들거리고 있고, 그리스가 파산하고 벨기에가 위험하고 유럽의 나라들이 지금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국경분쟁 미국과의 힘겨루기는 다른 약소국들이 가슴을 떨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절망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귀국하는 가정 가운데 중,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한국 중, 고등학교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대구 한 중학교 학생이 왕따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한 사건으로 뒤숭숭합니다.

지하철 막말남, 폭행여의 등장은 우리사회의 병든 모습들 단편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기도 힘들고, 졸업해서도 취직이 안 되고, 인턴 자리 하나 찾는데도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 가고 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 50을 넘으면 퇴직을 준비해야 하고, 너도 나도 자영업에 뛰어 들어 제 살 깎아 먹기 하다 결국 망하게 되는 구조가 가고 있습니다.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위협을 받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이념과 지역 그리고 정당들로 인해 나라가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세계에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가 오셨다는 오늘 천사들이 들려 준 것처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가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실 당시의 시대상은 오늘의 세계와 비슷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유대 왕은 헤롯이었습니다.
자기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 하고, 동생의 아내를 가로 챈 잔악무도한 독재자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 주는 한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와서 헤롯왕을 만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자기의 왕위가 위태롭게 느껴져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하루하루 학정에 시달리면서도 북한 주민들처럼 어떻게 해 볼 수 없어 체념하면서 살던 시대가 첫 번째 성탄절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전 유럽과 유대를 위시한 근동지역, 아프리카 일부까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세계 각처에는‘PAX ROMANA’(로마의 평화)라는 로마의 깃발이 세워졌지만 식민지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었습니다.
각처에서 사람들은 노예를 사고팔았고, 과중한 세금 때문에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하러 가는 모습 역시 시이저가 세금을 인상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구는 급증해서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내일에 대한 불안과 근심으로 인심은 흉흉했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 난 유대 국내 상황도 최악이었습니다.
여리고에서는 떼강도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빈부의 격차는 날로 격심해지고, 도처에 농민들 봉기, 로마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셀롯당원 독립군들과 로마 군인과 충돌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던 그런 불안정한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위태하기는 비슷했습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탄생하시게 되었고, 천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는가?

I. 성탄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본문 14절, 천사들의 찬양은 먼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이란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세우신 계획대로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세계를 통치하고 계신다는 증거가 바로 성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고 마침내 그 아들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실 때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실 것을 계획했다는 것을 바울은 로마서 5장 14절에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시기 이 천년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심으로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시기 천 년 전에 다윗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무엘하 7장 12~16절에,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했습니다.

기원 전 700년경 미가는 그리스도가 태어날 장소를 예언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했습니다.
옛적부터 계신 이, 영원 전부터 계신 이가 이 세상에 올 터인데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는 호적 하러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호적을 하라고 명을 내렸기 때문에 무려 140키로를 낙타를 타고 베들레헴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와 황제 역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기원 전 740년경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에게서 잉태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연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역을 할 것인가를 예언했습니다.
“그는 소경의 눈을 뜨게 만들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사형을 당하실 때 로마 군병들이 예수의 입었던 겉옷과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질 것에 대해서도 예언을 했습니다(시 22:18)
제자에게 배반을 당할 것도 예언이 되었습니다(시41:9)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막8:31)
승천하여 원래 있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마28:18, 요16:28)
성탄의 소식을 알려 주었던 천사는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행1:11)

그렇다면 바로 그 분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보내신 그리스도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마침내 이루신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실 예수로 인하여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그가 출생하신 장소가 영화롭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그 예언대로 전 세계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세계 열방과 민족들이 하나님께 돌아 와 “예수는 나의 구주,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성경학자인 헤르만 바벵크(H.Bavink) 박사는 구약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456번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대로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오는 실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나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이 있다는 것과 그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시대 속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교와 로마로부터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극심한 핍박을 받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하면서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다”고 했습니다(벧전1:8)
히브리서에서는 이런 성도들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히11:38)고 했습니다.
성탄의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II.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본문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했다는 성탄의 소식은 만인을 위한 기쁜 소식은 아닙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좋은 소식입니다.
천사는 성탄의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성탄의 소식은 모든 인류를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헤롯왕에게 성탄의 소식은 새로운 왕이 출현했다는 기분 나쁜 전쟁을 예고하는 뉴스였습니다.
그래서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했습니다.

‘시이저는 신이다’라고 인사하는 로마 사람들에게 ‘만왕의 왕’이 오셨다는 성탄의 소식은 반역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라고 인사하는 그리스찬들을 핍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성탄의 소식은 자기들의 전통과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이단의 소식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신성모독죄 십자가형을 내렸습니다.

성탄의 소식은 만일을 위한 ‘기쁨의 소식’이 아닌 것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평화의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찾아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온다”(요10: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소식은 “나를 위한 성탄”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왜 그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천사는 노래합니다.
성탄은 평화의 선포입니다.
천사는 “무서워말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무서워합니까?
평화가 없으니 무서워합니다.
무서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고 나서 하나님을 피해 무화과나무 아래 숨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피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불안의 시대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진정한 위기는 독재자들의 지배, 불합리한 사회, 직장과 사업, 전쟁의 위기, 경제의 위기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평화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통치해 주신다는 것은, 나와 관계된 가족들, 직장과 사업들, 이웃의 문제들을 모두 통치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땅까지도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동토의 땅 알라스카 술과 마약으로 물든 한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자 사라졌던 순록 같은 야생 동물들이 출현하게 되고 남미 파라과이 어느 지역에서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자 땅이 회복이 되어 옥수수와 감자가 수십 배 더 수확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사람들과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화목의 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화목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화목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고 그의 통치를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평화’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이 있는 자에게나 없는 자에게나, 성공한 자에게나 실패한 자에게나, 건강한 자에게나 병든 자에게나, 의인에게나 죄인에게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이 땅에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이 있다는 것과 그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탄의 소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예레미아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성탄의 소식이 기쁜 것은 ‘하나님과 이루어진 평화’ 때문입니다.
예레미아 31장 34절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평화’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
이 성탄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마누엘교회 새해 목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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